사실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문제점을 들라면 무엇보다 소수의 산업, 그리고 극소수의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현대기아자동차, LG전자 등의 기업을 제외하면 글로벌시장에서 명함을 내밀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 면에서 취약한데 제약 및 바이오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약산업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는 매우 어려웠다. 첫째, 고위험 고부가가치 산업이기 때문이다. 신약 개발을 위해 최장 15년의 장기간 노력이 필요하며 평균 8억달러의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어야 한다. 한 번 성공하면 한 해 100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블록버스터를 탄생시키기도 하지만 개발 시작에서 상품 시판에 이르는 성공률은 0.01%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산업구조의 안정성과 시장의 세분화 때문이다. 신약 개발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과 시간, 높은 위험도 등으로 인해 시장에 새롭게 진입하는 기업이 드물다. 그래서 세계 제약시장에서 활동하는 다국적 기업은 대개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다. 분야가 조금만 달라져도 필요한 전문지식과 기술이 완전히 달라지므로 시장은 상당히 세분화되어 있으며 새로운 분야로 넘어가는 것도 힘들다. 만약 다른 분야로 진출하려면 그 분야에 경쟁력을 가진 다른 제약기업과 인수합병을 한다. 제약산업에서 거대 기업 간 인수합병이 잦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신약 개발이나 블록버스터 약품 등과는 거리가 멀었던 우리나라 제약기업이 최근 연구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고, 그 성과를 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동아 에스티의 슈퍼항생제 시벡스트로의 미국 판매와 셀트리온의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의 일본시장 진출이다. 동아 에스티는 그 외 당뇨 신약기술을 브라질 유로파마에 수출하기로 했으며,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에 대한 미국 임상 2상을 완료하는 등 파이프라인에서도 상당히 의미 있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한미약품 역시 면역치료 물질을 미국 제약사 일라이릴리에 7800억원을 받고 수출했고 파이프라인에 있는 당뇨신약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LG생명과학도 연구개발 투자를 통한 신약 개발에 적극적이며 성과도 내고 있다.
10여년 전만 해도 FDA 승인을 받은 신약이 한두 개에 불과했던 국내 제약 산업계가 최근 놀라운 성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제약 및 바이오산업이 우리의 미래 먹거리가 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이런 성장세를 몰아 국내 제약기업이 글로벌시장에서 '블록버스터'를 터뜨려주길 기대한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