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 사회가 지역ㆍ학교ㆍ직장의 인연으로 짜인 매우 촘촘한 관계망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을 점점 더 느끼게 됩니다. 사람들이 때로 피곤해하면서도 이 관계망에서 쉽게 이탈하지 못하는 것은 좋은 인간관계와 인맥관리가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통념 때문입니다.
이런 연구들에 기대어 보면 좋은 학군을 찾아 이사하고 아이를 좋은 대학을 보내기 위해 애쓰는 것은 합리적인 투자인 셈입니다. 아이가 어린 시절부터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잠재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은 친구들과 관계를 쌓아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좀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아이가 재벌 3세가 두엇 다니는 유치원에 다니고, 초등학교는 대통령의 조카가 재학 중인 곳에 다닐 수 있도록 이사를 거듭했다고 합니다. 그런 아이들과 친구가 되는 것이 자기 아이에게 얼마나 소중한 자산이겠느냐고 자랑스러워하더군요. 그러나 유치원 친구와의 친분이 과연 평생 이어질지 궁금했습니다.
우리의 삶은 또 어떻습니까. 제가 비교적 여러 학교와 직장을 옮겨다닌 데다가 최근 이런저런 직책을 맡고 있는 탓이기도 하지만, 카톡이나 문자, 이메일을 통해 날아오는 여러 가지 모임 초대를 일정표에 표시하다보면 호젓한 저녁은 당연히 포기해야 할 뿐 아니라 때로 업무에도 지장이 생긴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모임에 욕 안 먹고 빠질 수 있을지 자주 고민합니다.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삶을 꿈꾸지만, 그러다가 사회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어렵습니다.
최근 세상을 떠나면서 큰 뉴스거리가 된 분이 있습니다. 그는 명절과 휴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외부인과 조찬을 했고, 하루 평균 다섯 번 모임에 참석할 정도로 광범위한 인맥을 관리했다고 합니다. 인간관계가 사업 성공의 핵심 요인이라고 자서전에 쓰기도 했다지요. 심지어 백면서생인 저도 그분의 소식을 몇 번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분과 친하다고 알려졌던 많은 이들이 사실은 별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고 손을 내젓기 바쁩니다. 넓은 인간관계란 무엇인지,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어느 날 제가 가진 '쓸모 있음'이 사라질 때 같이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릴 제 인간관계들을 꼽아봅니다. 서늘한 봄입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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