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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빛' 자서전으로 본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최종수정 2015.04.10 11:50 기사입력 2015.04.10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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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모 학대·빈곤의 어린시절
특유의 성실함·적극성이 무기
1000원으로 2조기업 키워

기자회견을 통해 자원비리 관련 결백을 주장한 성완종 전 회장. 사진=아시아경제 DB

기자회견을 통해 자원비리 관련 결백을 주장한 성완종 전 회장. 사진=아시아경제 DB


[아시아경제 주상돈 기자]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충남 서산에서 4형제 중 맏이로 태어났다. 이 때 어머니가 범상치 않은 꿈을 꿨고 외할아버지가 이를 듣고 '이놈이 나중에 큰일 낼 놈'이라고 걱정하면서 사흘 동안이나 식사를 걸렀다고 한다.

어린시절은 처절한 빈곤과 어두운 가정환경으로 점철된다. 새 어머니의 학대에 못 이겨 어머니를 찾아 서울로 올라간 그는 낮에는 약국 심부름과 신문 배달, 등짐을 지고 밤에는 교회 부설학교에서 공부하며 억척스럽게 생계를 꾸려갔다. 자서전 '새벽빛'에서 그는 "가난은 나의 재산"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처절한 빈곤을 경험했다.

1970년 어머니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단돈 1000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화물수송업에 이어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1985년 대전ㆍ충남지역 서열 3위의 대아건설을 인수해 본격적인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특유의 성실함과 적극성으로 지역의 간판 건설사를 육성한 그는 미국 퍼시픽웨스턴대학에 등록, 5년 만인 1991년 경영학사 학위를 취득한 데 이어 한양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목원대학교에서 경영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세상은 직간접적으로 주고받는 관계에 있다고 봤다. 성 전 회장은 "모든 사회생활을 주고받는 관계라고 규정할 때,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주는 것이 앞서야 한다는 점"이라며 "먼저 주고 나중에 받되 '줄 때는 겸손하게 받을 때는 당당하게' 이것이 내 기브 앤드 테이크의 원칙"이라고 자서전에 썼다.

2003년에는 당시 국내 도급 순위 28위인 경남기업을 인수하며 전국구 건설사로 발돋움했다. 이후 경남기업과 중앙청과, 온양관광호텔 등의 그룹 연 매출을 2조원대까지 키웠다. 초등학교 중퇴 학력으로 기업을 일군 과정은 한 편의 인간승리 드라마였다.
유서에 "어머니 묘소 옆에 묻어 달라"고 남길 정도로 애틋한 모정을 가졌던 성 전 회장은 한 기고문에 "어둠 뒤에 분명히 다가올 희망의 새벽빛과 같은 존재"라고 적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어머니의 뜻과 어긋나는 길을 갔더라면 지금의 내가 과연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고도 했다.

2000년 발을 디딘 정치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16대 총선에서 자민련 공천을 받으려다 탈락했고 2004년 총선 때는 공천을 받았지만 국회 입성엔 실패했다. 이때 자민련에 불법 정치자금 16억원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돼 유죄를 받았다. 행담도 개발 비리에 연루돼 기소됐다.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특별사면을 받았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선진통일당(옛 자유선진당) 소속으로 충남 서산·태안에 출마해 당선됐다. 하지만 2년 뒤 성 전 회장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었다.

기업 상황도 악화돼 지난해 경남기업은 완전 자본잠식상태에 빠졌다. 성 전 회장은 채권단의 지원 조건으로 지난해 최대 주주 지위를 내려놓은데 이어 채권단의 추가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경영권과 지분을 포기하기로 했다. 하지만 채권단은 추가 자금 지원을 거부했고 경남기업은 결국 상장폐지와 법정관리 수순에 돌입했다.

"어제보다 오늘이 나을 것이이라는 확신만 있으면 아무리 큰 고난이 기다리고 있어도 얼마든지 극복 할 수 있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것이라는 꿈이 있다면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도 아름답다."

더 이상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걸까. 9일 새벽 유서를 남긴 채 잠적한 성 전 회장은 북한산 형제봉 인근에서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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