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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인듯 추상아닌 추상같은' 로스코, 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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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출처=민음사/게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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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레드' 주인공 국내 첫 회고전 기념
유년·청년·말년시절 일생 다룬 해설집
예술가로서 방황·성공·사랑 다뤄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우리는 영어로 말할 수 없어요." 미국 동부 끝자락 뉴욕에서 북서부 끝에 위치한 포틀랜드로 가는 기차 안. 열 살배기 소년의 목에 걸려 있던 표찰에 적힌 글귀였다. 바로 러시아 출신 유대인으로 미국에 이민 온 어린 시절 마크 로스코(1903~1970년)의 얘기다. 훗날 그는 자신만의 화법(畵法)으로 미술계에서 승승장구하지만,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용어를 빌리자면 '뿌리를 내릴 수 없어 불안하고 두려운 감정'을 뜻하는 '운하임리히(독일어 Unheimlich, 집처럼 친숙하지 않은)' 상태가 그의 생애를 관통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로스코의 일생을 다룬 연극 '레드'에 이어 전시가 지난 주 개막됐다. 두세 개의 색깔로 윤곽선이 뚜렷하지 않은 직사각형 색 덩어리를 상하로 배치해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우는 그림. 로스코를 잘 모르는 관객들에겐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압도적'이고 '난해한' 작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찬찬히 그림을 살피고 작가의 삶을 알아간다면, 누군가 그렇듯 눈물까지 흘리진 않더라도 그림 앞에서 저마다의 전율을 느끼지 않을까. 이를 돕기 위해 철학자 강신주(48)가 전시 도록을 겸한 해설집을 냈다. 로스코의 글과 그에 대한 기록, 그림을 반복해서 읽고 또 보면서 작가와 작품의 전모를 풀어간 책이다.

해설집은 로스코의 일대기를 유년시절과 청년시절, 그리고 말년 세 파트로 나눠 통시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가족사와 연인들 그리고 화업(畵業)의 바탕이 된 일련의 사건들이 잘 정리돼 있다. 책을 읽고 있으면 로스코가 겪는 갈등과 예술가로서의 고뇌를 깊숙이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
마크 로스코 전 2권 양장세트

마크 로스코 전 2권 양장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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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로스코가 열 살이었던 1913년으로 돌아가 보자. 그의 가족은 러시아 드빈스크(현재 라트비아의 다우가프필스)를 떠나 포틀랜드에 있는 '작은 러시아'에 정착한다. 1차 세계대전의 암운이 드리워질 무렵 유럽의 반유대주의 광풍을 피해 온 것이었다. 그곳에서의 기쁨도 잠시, 일곱 달도 채 안 돼 아버지가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어린 로스코는 그렇게 미국 생활을 시작한다. 이민자 유대인 청년으로 세상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공붓벌레 로스코는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다는 예일대에 인문학 전공으로 입학한다. 하지만 반유대주의의 지배를 받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 학교 당국 역시 돌연 장학금 지급을 취소하며 로스코를 중퇴하도록 내몰았다.

그는 자신이 몸담아야 할 곳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배회했던 곳이 바로 학교와 가까운 '뉴욕'이었다. 미술, 음악, 공연 등 도시가 뿜어내는 예술 에너지에 로스코가 반했을 법하다. 고향으로 돌아가선 지역극단에 들어가 잠시 연극 활동을 한다. '예술'이야말로 자신이 가야할 길이라 확신한 그는 다시 뉴욕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초보 미술가로서의 발걸음을 떼고, 작가로 성장하기까지 6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다. 첫 전시를 열고, 아이들에게 조각과 회화를 가르치게 됐으며 표현주의 화가들의 모임인 '더텐' 창설 작업에 참가했다. 삼십 대 초반까지 10여 년의 시간은 로스코의 예술철학인 '소통'의 밑거름이 됐다.

많은 추상화가들이 그렇듯이, 로스코 역시 구상에서 점차 추상으로 넘어간다. 2차세계대전 당시엔 신화와 관련된 반구상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그림을 그린다. 전쟁과 가난 속에 공포와 불안이 그림의 분위기에 녹아있다. "폭력의 시대에 세련된 색과 형식에 대한 선호는 부적절한 것처럼 보인다"는 작가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1946년부터 전혀 다른 형태의 완벽한 추상화가 전개된다. 신화 그림에서 완벽한 추상화로 바뀌는 시기 로스코는 최고의 미술품 수집가인 구겐하임의 초대로 개인전을 열게 된다. 또한 예술가로 자신을 인정해주고, 따뜻하게 품어주는 동화책 삽화가인 멜과 재혼도 한다.

가정을 다시 꾸리고, 미술계에서도 인정받은 로스코는 안정감을 되찾은 덕분일까. 본격적인 회화에 대한 탐구를 지속한 그는 자신을 대표하는 그림을 탄생시킨다. "나는 내 그림이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그림 안의 형태들은 연기자들이다." 두세 개의 사각형 색채 덩어리를 마치 돌처럼 쌓아놓은 듯한 그 그림이다. 강신주는 로스코의 그림을 두고 진정한 소설쓰기가 그러하듯 "'나'라는 주체의식을 고집하지 않고,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나로 탄생하는 과정"을 집약시켰다고 표현한다. 이처럼 로스코는 자신의 회화를 관객들에게 좀더 "친밀하고 인간적으로 다가가려고"했다. 대형 캔버스로 전시 공간을 꽉 채웠던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였다.

1955년 이후 로스코는 예술가로서 정점에 서 있었다. 작품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케네디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됐고,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까지 개최하게 됐다. 하지만 이때부터 오히려 그는 불안감과 중압감, 또 다른 '운하임리히'를 겪게 된다. 동료화가들은 그를 '부르주아적 성공'에 취했다고 비판했고, 둘째 부인 멜과는 별거생활을 하며 소원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소통'하려했고, '시대의 비판'을 그려 온 화가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공공미술 벽화 작업에 적극적으로 매달린다. 그러나 그의 몸부림은 새로운 미술 사조를 원하는 흐름을 되돌릴 수 없었다. 1962년 앤디 워홀로 대표되는 팝아트가 떠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로스코의 곁에 남는 사람들은 하나 둘씩 사라지고, 훗날 '로스코 채플'이 된 토머스 대학교 신축 예배당의 벽화들은 모두가 검은색 톤으로 물든다. 그러나 드라마적 회화를 꿈꾼 작가의 의지는 자살을 감행하기 직전 피어오른다. 50여 일 동안 그린 단 두 점의 그림에는 각각 파란색과 붉은색이 주색으로 쓰였다.

로스코를 만날 수 있는 전시들이 유럽과 미국에서는 많았던 편인데 비해, 국내에서는 제대로 그를 소개했던 기회가 전무했다. 이참에 로스코 그림을 만나면서,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커진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는 게 어떨까. 강신주가 철학과 시대상을 녹여 풀어쓴 로스코는 어렵지 않고, 술술 읽힌다.

(MARK ROTHKO 마크 로스코 전 2권 양장세트/강신주, 코바나컨텐츠 지음/민음사/5만원)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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