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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통화정책 효과 없는 시대…미래 끌고 갈 산업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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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정부 정책에 조목조목 비판 나선 장하준 교수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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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통일방식은 실현 불가능 朴정부 '통일대박론' 우려감
실물경제 튼튼하지 못해 저유가에 투기성 수요 늘어 문제
금융규제 당국의 역할, 심판 뛰어넘어 판사까지 해내야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세계경제가 휘청일수록 눈길을 끄는 인물이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장하준 교수다. 그는 신자유주의 비판으로 명성을 쌓은 경제학자다. 시장 만능주의와 영 ㆍ 미식 금융 규제완화를 비판하고 복지국가와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해왔다.
지난 13일 저녁 영국에 있는 그와 1시간 동안 국제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장 교수는 "통화정책이 효과가 없는 시대"라고 못을 박았다.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라'는 취지의 최경환 노믹스는 "잘못된 인과관계에 빠져 있다"고 쓴소리를 남겼고, 규제완화를 주장하는 금융당국에 대해서도 '직무유기'라고 일침을 가했다. '증세없는 복지론'에 관해서는 "말도 안된다"며 쐐기를 박았다. 무엇보다 미래 산업의 먹거리를 키우는 일이 급선무라고 역설했다. 수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는 때론 냉정하고 때론 열정적이었다.

◆통화정책이 무력한 시대 = "조금 도움은 되겠지만 크게 효과를 주긴 어렵다" 한국은행이 단행한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그의 평가다. 장 교수는 "브라질처럼 금리 10%대에서 1%p 수준은 의미가 있지만 1~2%대 저금리 상황에서 금리를 내린다고 투자안할 기업들이 더 투자를 하진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금리인하가 효과보다 저성장 시대의 불확실성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실상의 제로금리 시대엔 자산의 가격이 '0'이 돼버린다고도 했다. "금리가 어느정도 수준이어야 투자를 해 공장을 세우면 앞으로 몇프로 이윤이 나오고, 은행금리는 높으니까 은행에 돈을 넣지 않겠느냐는 판단이 서지 않겠습니까. 금리가 0~2%대에서 움직이면 투자에 옥석구분을 할 수 없고 시장기구가 마비돼 버릴 수 있다"고 했다.
최경환노믹스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그는 초이노믹스가 '잘못된 인과관계의 오류'에 빠져있다고 말했다. "경제가 빨리 성장할 때야 주택가격이 계속 올라갈 수 밖에 없었고 소위 '부동산 불패신화'라는 게 통했죠. 이때부터 사람들이 착각하기 시작한 겁니다. 경제성장이 잘되서 부동산값이 올라간건데 부동산 때문에 경제성장이 이뤄졌다고 생각하게 됐죠. 경기를 띄우려고 부동산을 자꾸 늘리는 나쁜 습관도 이때 만들어졌는데, 이렇게 되면서 거품만 커진 겁니다."고도 했다.

'큰 정부주의자'인 그가 걱정하는 것은 따로 있다. 재정정책과 통화완화정책은 효과가 미미하게라도 나타날 수 있지만 기업의 미래 먹거리가 사라지는 것은 큰 파국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자료:출판사 부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자료:출판사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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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넛크래커(nut-cracker) 되선 안돼 = "밑에선 치고 올라오는데 위로 뚫지 못하고 있다." 장 교수는 한국경제의 가장 큰 취약점을 이렇게 진단했다. 그는 우리나라 기업의 미래 신성장동력이 없다는 점을 우려했다. "우리나라 주력산업 중 휴대전화 빼곤 다 80년대 만들어진 산업입니다. 자동차도 중국에 추격받고 있고 조선업은 1등을 뺏긴지 오래됐습니다. 철강이나 휴대폰도 중국의 추격을 받고 있죠. 그렇다고 생명공학이나 나노기술 같은 첨단산업은 뚫고 들어가지 못하고 있어요. 일본, 독일, 스위스처럼 경제 근간 이루는 기계부품 산업에 진입 못해서는 앞날이 막막해요."

그러면서 그는 정부 주도의 산업 성장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장주의에 물들어서 정부가 왜 나서냐고 하지만, 미국의 주축 산업을 보면 다릅니다. 반도체는 미 해군, 우주항공산업은 미 공군, 생명공학은 정부보건연구원이 주도해서 엄청나게 키우고 있죠."

장 교수는 비판의 끝에는 '큰 정부'론이 있다. 복지국가와 정부주도의 산업 육성책을 통해 난국을 돌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경제학 강의'에서 정부의 역할로 '철인왕'을 강조했지만 실제로 정부가 철인왕이 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정부가 제대로된 구조개혁을 하고 정부주도의 경제산업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여러겹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정부도 완벽한 존재가 아니죠. 여러겹으로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우선 끊임없이 대화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기본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부도 자기 입맛대로 정책을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죠. 어느 정당이 정권을 잡든 사회적 방향이 정해져 있어야 하고, 검증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져 있어야 하죠."

이 과정이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도 과거 부패로 몸살을 앓았다. 따라서 우리도 사회적 합의를 만들고 정부 견제장치를 만들어 정부가 철인왕에 가깝게 정책을 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가 강조하는 스웨덴식 복지국가 모델에 대해 '이상주의적이고 비현실적이다'는 비판이 따라붙지만 그는 "현실적인 것만 하면 사회개선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포항제철이나 경부고속도로도 당시에는 비현실적이어서 하기가 쉽지 않았죠. 비현실적이란 말은 변명이 안됩니다. 하루아침에 사회복자지출을 10%에서 30%로 올릴 순 없어요. 차근차근 조금씩 하면 됩니다. 스웨덴도 19세기 말까지는 유럽에서 가장 작은 정부였어요."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자료: 출판사 부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자료: 출판사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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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규제당국 '판사'역할 해야 = 장 교수는 불필요한 규제는 대폭 완화할 것이라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발언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 교수는 "금융산업이 중요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금융 산업은 일부분"이라고 선을 그었다. 금융산업이 좋아지는 정책을 펼치다보면 다른 산업이 피해를 보는 경우도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영국의 예를 들었다.

"통화강세 정책을 많이 펼친 덕분에 자본 유입이 활발해 금융업은 발전했지만 수출 제조업체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기술력이 있는 기업들이 수출을 못하니까요."
임종룡 위원장이 금융규제당국은 코치가 아니라 심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설명한 것에 대해 큰틀에서 수긍하면서도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심판은 다 정해져 있는 규칙을 집행만 하면 되죠. 하지만 금융은 계속적으로 변하고 금융수요도 바뀌고 금융상품도 새로 나옵니다. 이럴 때 정해진 규칙에 대해서 난 심판이니 내 알바 아니라고 하면 안됩니다. 그렇다면 법 개정은 국회의 몫이고 심판은 관여하면 안 된다는 논리가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죠."

금융 당국에 대해 할 말이 많아서일까. 그는 쓴소리를 덧붙였다. "선수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더라도 의견을 표명해야 합니다. 속도 위반을 했을 때도 30킬로와 50킬로 위반시 내는 벌금이 다르잖아요. 금융당국이 운동 경기의 심판 역할에만 머물러는 안되고 '판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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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경기 '거품'으로 들어올린 회복…유럽도 암울해 = 장 교수가 보는 세계경제 상황은 어떨까? 그는 유럽경제 상황과 관련해 "가장 큰 리스크 상황에 있다"고 평가했다. 그리스와 스페인 경제가 침체 중이어서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스페인 12월 총선 앞두고 긴축에 반대하는 정당들이 선거에서 이긴다면 경기 불안정성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유로권에 비해 회복을 잘했다고 평가받는 미국도 자산거품으로 회복한 부분이 있는 점도 지적했다. 그가 '6월 금리 인상설'이 탄력을 받고 있는 미국 경제에 대해 비관적인 것도 그래서다.

"연준이 금리를 올린다고 하면 주가가 떨어지겠죠. 저금리를 믿고 주식을 샀는데 겁이 나는 거에요. 그런 것을 보면 미국의 경기회복도 얼마나 허약한 지 알수 있어요. 삐끗하면 큰일나는 거죠. 기본적으로 선진국경제가 가장 큰 문제인데 거기에서 끝나는게 아니에요. 선진국은 중국 수출이 먹여 살리는데 중국이 감속 성장을 하고 있어요. 중국이 최대 수출국인 우리나라도 영향이 크지요."

저유가에 대해서도 암울한 진단을 내놨다. 실수요보다 투기성 수요가 많다고 우려했다. 그는 "가격 변동이 실제 수요보다 훨씬 더 크게 움직일 수 있는데 이는 그만큼 실물경제가 튼튼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세계경제가 금융위기 이후 회복 국면에 들어섰지만 취약한 요소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경제학의 위기인가 =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학이 제대로 된 전망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경제학자 갈브레이스가 경제학에서 예측은 점성술보다 못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웃으며 말하면서 "성장률 전망은 그만큼 맞추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것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저성장 저금리 저투자의 '뉴노멀' 시대가 가져오는 구조적 장기 침체의 이면에는 분배문제가 있다고 언급했다. "수출과 내수의 불균형을 많이 이야기 하는데 여기에 분배 문제도 들어가 있지요. 소득이 높은 사람들은 절대액수로 많이 쓸지 모르지만 소비성향의 측면에서 보면 쓰는 비율이 낮아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가 내수를 살리려면 소득 분배를 개선해야 합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위주의 경제정책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도 성장기에는 GDP가 중요하지만 지금은 여러 지표들을 같이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례로 여성의 경제 기여도가 과소평가되고 있는 만큼 가사노동도 국내총생산(GDP)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그는 제언했다.

그는 현정부의 '통일대박론'에 대해 "지금 상태에서 통일을 하면 재앙이 온다"고 경고했다. 독일은 통일 이후 연평균 국내총생산(GDP)의 5%를 구동독 지역의 보조금으로 사용했는데 당시 동독과 서독은 지금의 남북한처럼 경제 규모 차이가 크지 않다. 만약 우리가 독일통일 방식을 따른다면 남한이 국민소득의 20~35%를 북한에 지원해야 하는데 이는 실현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통일이 경제에 도움이 될 수준까지 가려면 우선 북한의 경제력을 올려놔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하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0년부터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뮈르달상과 레온티예프상 등을 수상했다. 그의 대표작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세계화'와 '개방'만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조류에 대한 반박논리를 제공하면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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