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자냐 관리자냐"…도입 4년 '수석교사제' 명암 엇갈리는 이유
경기도교육청 "수석교사제 재검토" 찬반 엇갈려…'애매한 역할'로 겉도는 학교 많아…학교 협조 뒷받침되면 긍정적 효과 "제도적으로 권한 보장돼야"
[아시아경제 이윤주 기자] #1. 서울의 한 고등학교 수석교사 A씨는 교감과 수업에 대한 의견차이로 사사건건 충돌하다 '원수지간'이 됐다. 수석교사는 관리직은 아니지만 현장 교사 가운데 교감급의 직위를 갖고 있어 '장학' 업무에서 교감과 역할이 겹치기 때문이다. A 교사가 연구수업 등을 진행하거나 수업모델 개발을 추진하는 등 '교사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건건이 교감-교장의 결재라인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사이가 틀어진 후로는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하게 됐다.
#2. 서울의 또 다른 고등학교 수석교사 B씨는 지정된 날짜 없이 자신의 수업을 '항시' 공개한다. B 교사의 수업 장면을 직접 보고 자신의 수업에 참고하려는 교사들이 같은 학교뿐 아니라 다른 학교에서도 찾아오기 때문이다. 수업을 참관한 한 초임교사는 "수업 잘하기로 워낙 소문난 분이라 찾아왔는데, 혁신적인 수업 모델을 통해 큰 자극을 받았다"며 "본격적으로 개인 컨설팅을 받아 향후 수업에 적용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도입 4년차를 맞은 '수석교사제'의 명암이 학교마다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여기에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이 지난달 '수석교사 제도 자체를 다시 생각하겠다'고 밝혀 제도 '폐지'에 힘이 실리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면서, 수석교사회 등 교사단체가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장의 교사들은 현행법이 수석교사의 권한을 애매하게 규정하고 있어 이들 교사의 역할이 학교마다 '천양지차'라는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15년 이상 경력을 가진 교사 가운데 수업 역량 등을 평가받아 선발된 수석교사는 담임과 행정업무를 맡지 않고 수업시간도 일반 교사의 절반이다. 교수법을 개발해 수업의 질을 높이고, 동료 교사들에게 수업 관련 컨설팅 등을 하게 된다. 평교사에서 교감과 교장 등 '관리직'으로 승진하는 트랙과 별도로 '수업을 잘하는 교사'를 우대해 공교육을 내실화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쉽게 생각하면 교장·교감 등 관리자의 업무 중 행정업무가 아닌 '장학(수업감독권 등)'만 가져가 이와 관련된 업무에만 집중하는 교사인 것이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학교 내에서의 '위치'를 두고 혼란을 빚는 경우가 많다. 학교의 분위기, 특히 교장과 교감이 수석교사에 얼마나 협조적이냐에 따라 수석교사의 입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선 수석교사는 담임과 행정업무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잡무가 많고 교사 수가 적은 학교의 경우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다. 수석교사가 '정원 외'로 선발되면 이 같은 동료 교사의 부담이 덜하지만 올해 수석교사를 정원 외로 선발하는 시·도는 인천·전북 등 전국에서 5곳뿐이다. 수석교사 선발이 정원 안에서 이뤄지면 학교 쪽에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수석교사가 동료 교사들에게 일을 가중한 꼴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다 교장과 교감이 수석교사와 특정 업무에서 '권한 다툼'을 벌이기라도 하면 수석교사는 관리자-동료교사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있는 김모 교사(35)는 "교수법을 연구·개발해 동료 교사들의 수업을 돕는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교사 승진 자리가 하나 더 생긴 것일 뿐'이라는 시선이 존재한다"며 "교장·교감 승진을 준비하다 점수가 부족할 때 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니냐는 냉소적인 시각도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는 수석교사들의 전문성에 대한 신뢰도 떨어질 수밖에 없어 수업 컨설팅 등을 받는 동료교사들의 시선이 달갑지만은 않다.
한편 수석교사제가 원활하게 자리 잡고 있는 학교의 경우 수석교사와 교장·교감의 역할이 비교적 명확히 분리돼있으며, 이들 관리자가 수석교사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2012년 도입 첫해부터 지금까지 4년째 영어과 수석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장은경 청량고 교사(45)는 "특히 신임교사와 복직교사 등으로부터 수업 역량을 높이고 싶다는 컨설팅 부탁이 많다"며 "이들의 수업방식을 함께 고민하면서 새로 개발한 교수법을 도입해보고 그것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감사 인사를 받을 때면,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성취감과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장 교사는 "학교의 협조, 교사의 수업에 대해 자유롭게 평가하고 토론하는 분위기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석교사제는 '1급 정교사'처럼 하나의 '자격시험'으로 도입됐으나, 한번 자격을 취득하면 징계 사유가 있지 않는 한 그것이 박탈되는 사례가 거의 없는 교장·교감직과 달리 4년마다 자격을 재평가하게 돼 있다. 올해가 2012년 처음 선발된 1기 수석교사들의 마지막 해이므로 연말에 평가 결과를 놓고 제도의 정착 여부가 또 한 번 갈림길에 설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 수석교사는 "수석교사제가 본래의 취지를 살려 정착되려면 수석교사의 권한이 좀 더 명확하게 법으로 보장돼야 한다"며 "학교 분위기나 관리자의 태도에 따라 그 효과가 극단적으로 갈린다는 것은 수석교사의 제도적 위치가 그만큼 불분명하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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