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137년만에 한국 찾은 헨릭 입센의 작품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인형의 집', '유령', '페르귄트' 등으로 잘 알려진 노르웨이 극작가 헨릭 입센이 1877년에 쓴 희곡 '사회의 기둥들'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무대에 올려졌다. 창작된 지 137년 만에 한국 관객들을 만난 이 작품은 "놀랍도록 현대 우리 사회와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김광보 연출이 "3월 말에 첫 번역본을 받았는데 4월16일 세월호 참사와 이 희곡이 안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연출하기가 굉장히 씁쓸하고 참담했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다.
'사회의 기둥들'은 1877년 10월 초반으로 6000부가 발행됐고, 7주 후 다시 4000부가 발행됐다. 당시 희곡으로서는 상당한 '신드롬'을 낳았다. 이듬해인 1878년 1월 번역본만 세 가지가 출판됐다. 2월에는 이 세 버전을 이용한 공연이 베를린에서만 동시에 다섯 극장에서 이뤄지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상업적인 오락극이 유행하던 독일 연극계에서 진지한 주제의식과 새로운 극작술을 선보인 이 작품은 젊은 층들의 호기심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했다.
김광보 연출은 "제목에서 말하는 '사회의 기둥들'이란 사회를 이루는 기둥과 같은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의 이면에는 숨겨진 위선, 거짓, 음모, 불륜과 같은 여러 내용이 들어있다. 하지만 어느 사회에도 물질, 욕망, 이기심, 사업적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이 비슷하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이 동시대성을 갖는다. 이 작품은 자신이 사회의 기둥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싶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작품은 겉과 속이 다른 주인공 '베르니크'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갈등을 그려내고 있다. 특히 주민들 몰래 철도 노선 공사로 이득을 얻으려고 음모를 꾸미는 이야기나 수선을 제대로 하지 않아 불안하게 출항하려는 배를 보고도 침묵하는 이야기 등은 시대적 배경을 2014년 한국으로 옮겨와도 무리가 없다. 김 연출은 "각색을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깜짝 놀랄 정도로 우리의 현실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직사각형으로 구성된 무대는 "침몰하는 사회, 침몰하는 국가"를 뜻한다는 설명이다. 입센이 작품을 구상하던 당시 유럽에서 못 쓰게 된 배를 출항시키는 인명경시의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났는데, 이를 작품으로 옮긴 것이 '사회의 기둥들'이다.
원작 자체는 무겁고 심각한 분위기지만 연극은 곳곳에 위트가 숨겨져 있다. 김광보 연출은 "무거운 이야기를 전달하려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것들이 있어야 한다. 심각한 주제가 리듬감있게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공연은 이달 30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진행된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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