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언어의 소멸은 언어의 죽음을 넘어서 한 세계의 죽음이다. 그 언어를 쓰는 사람이 아무리 소수라고 해도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 언어를 통해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이들이 이룩한 세계의 사멸이다.
그러나 그 같은 '한글에 의한 한류(韓流)'를 보면서, 또 한글에 쏟아지는 세계인들의 찬사를 들으면서 과연 우리 스스로가 자부심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지 나는 의문이 든다. 홀대와 왜곡과 오용에 시달리는 우리말, 글의 처지를 생각할 때 우리 자신이 우리말과 한글에 대해 스스로 떳떳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적잖은 국어학자들은 우리말, 글을 '병든 언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집집마다 두세 권씩 갖고 있는 영어 사전에 비해 국어사전은 주변에서 찾아보기도 힘든 현실에서도 우리의 말과 글이 놓여 있는 초라한 형편이 드러난다.
국경일로 지정된 뒤 두 번째 맞는 한글날. 우리는 한글이 1446년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할 듯하다. 568년 전 한글의 반포는 한글 창제의 완료가 아니라 시작이었을 뿐이다. 이 말과 글을 잘 키우고 발전시킴으로써 우리는 끊임없이 한글을 창제해야 한다.
이명재 기자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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