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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프론티어]"女직원 야간근무 시켜줘" 총대멨던 그녀

최종수정 2014.09.30 11:38 기사입력 2014.09.30 11:30

동아제약 제품개발 소장, 손미원 상무…첫 여성 정규직 "남자와 똑같이 일하겠다"

[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

"여성은 아이를 낳고 키우면 훨씬 강해지고 현명해져요. 아기를 키우면서 축적한 삶에 대한 역량은 어마어마합니다. 이것을 일하는데 쏟으면 동료 남성 보다 훨씬 성과를 낼 수가 있지요." 동아제약의 제품개발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손미원 상무는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 일터에서 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식을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은 모성애가 직장맘을 더 강인하게 만든다는 논리다.
◆반전의 카리스마 = 단아한 단발머리에 하얀 피부, '천상 여자'인 외모와는 달리 손 상무는 반전이 넘치는 인물이다. 온화한 미소 뒤에 숨겨진 강단이 느껴졌다.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다 출산 후 육아가 힘겨워 회사를 그만두는 직장맘에 대해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손 상무는 "육아휴직기간 동료가 승진하면 자신이 경력에서 뒤쳐진다고 생각해 회사를 그만두는 여성이 있다"면서 "이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자신이 일터에서 떨어져있는 동안 성과를 만들어낸 동료가 승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는 "자녀를 키우던 에너지를 업무에 쏟으면 먼저 승진한 동료보다 훨씬 업무효율을 높일 수 있고, 이는 승진으로 이어진다"며 "육아휴직을 '1보 전진을 위한 2보 후퇴'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소에서도 손 상무의 리더십은 유명하다. 회식 자리에서 본사 마케팅부 직원이 "소장님을 보니 조용필의 단발머리가 생각난다"고 농담을 건넸다가 연구소 직원들을 일순간 '얼음'으로 만든 적도 있다. "소장님한테 어떻게 그런 농담을 할 수 있느냐"며 걱정스레 손 소장의 분위기를 살폈다는 후문이다.

◆"여자가 어떻게 의대를 가느냐" = 손 상무가 남성일색의 제약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생명과학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의대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포기했다. 대신 약대를 선택했다. 그는 "지금은 약대에 여자가 훨씬 많지만 제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정원 80명 가운데 여학생은 17명에 불과했다"면서 "이 마저도 여자가 약대를 졸업하면 학교에 남거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손 상무는 제약분야는 물론 산업계 전반에 여성이 드문 시절 제약사를 선택했다. 생명과학을 연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구 결과를 상용화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는 "제품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이 제 적성에 맞았다"면서 "연구 결과를 산업화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동아제약에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동아제약의 첫 정규직 여직원으로 입사한 손 상무는 초반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서울대 약학대학원 동기 너댓명과 함께 입사한 그는 유일한 여성 연구원이었다. 합격 통지서를 받던 날, 동기들과 똑같은 업무를 맡을 것으로 여겼지만 현실은 달랐다.

당시 연구원에 있던 계약직 여성 연구원들의 업무는 남성 연구원들의 연구결과를 문서로 작성하는 일이었다. 여성들이 결혼과 동시에 회사를 그만두는 분위기였던 만큼 여성 연구원은 잠시 일하다 그만둬도 부담이 없는 '촉탁(정규직이지만 고용계약을 맺지 않고 특수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인 탓이다. 면접에선 "여성이 어떻게 이런 힘든 일을 하느냐"는 물어보던 시절이었다.

◆포지션 투쟁의 5년 = 손 상무는 굴하지 않았다. 그는 "박사 학위 과정도 힘든 일"이라며 "조금 일하다 그만 둘꺼면 처음부터 들어오지 않았다"고 맞받아쳤다. 똑같이 약대를 나온 만큼 같은 업무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손 상무는 입사 직후 이후 여직원 모임을 결성했다.

당시 여성 연구원은 5명. 이들은 회사를 상대로 5년이나 치열한 포지셔닝(직위) 투쟁을 했다. 손 상무는 "여성 연구원이라 특혜를 받거나 (여성 중심의)근무환경을 개선해달라는 식의 요구가 아닌 남자 직원과 마찬가지로 여직원도 동등하게 일하게 해달라는 것"이라며 "입사 후 포지셔닝 투쟁을 하던 5년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동등한 업무를 배정받기 위한 투쟁 중에는 '야간근무'도 포함됐다. 남자 직원들도 기피하는 야간당직을 여성 연구원들이 하겠다고 스스로 손을 든 것이다. 이 때문에 여성 연구원들 사이에 분열이 생기기도 했다. 손 상무는 "떳떳하게 남자들과 똑같이 일하고 똑같은 대우를 요구하자고 설득했다"고 전했다.

남녀 업무에 차별을 두지 않은 지금은 연구소에 포지셔닝 투쟁을 위한 여성 모임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 연구원간 친목 모임은 분기별로 진행하고 있다. 손 상무는 "제가 그런 모임을 결성하는 것을 좋아한다"면서 해맑게 웃었다.

 
◆성공 비결은 일에 대한 고집 = "저는 단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고집이 세고, 윗사람 말을 잘 안 들어요. 성질도 못 됐습니다"

거침없는 자아비판부터 쏟아낸 손 상무는 "일을 아주 많이 좋아하고, 일에 대한 고집"을 성공 비결로 꼽았다. 입사 초반 남성 동기들의 그늘에 가려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그는 남성과 똑같은 업무를 맡으면서 진가를 발휘했다. 동아제약의 천연물신약 3호인 소화불량 치료제 모티리톤을 개발, 상용화까지 성공시킨 것이다. 손 상무는 "모티리톤을 개발했던 때가 가장 좋았다"면서 "당시 (동아제약)회장님에게 금박이 덮힌 상패를 받았다"고 소개했다.

손 상무가 천연물신약 개발에 성공하게 된 배경은 삶의 원칙 덕분이다. 남들과 다른 일에서 성과를 내자는 소신이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는 "한참 뜨고 있는 바이오나 안정적인 화학 신약이 아닌 마이너 분야인 점이 마음에 들었다"면서 "니케시장(틈새시장)을 공략한 점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소통에 소홀한점이 가장 아쉽다" = 손 상무에게 신약 개발 이외의 분야는 관심 밖이다. 이 때문에 한가지 연구에 몰입하면 주변 상황은 신경쓰지 못했다. 대부분의 여성 직장인처럼 남성 동료와의 소통에 문제가 생긴 적이 많다고 스스로 고백할 정도다. 손 상무는 "남자들은 서로 술도 마시고 끊임없이 소통하지만, 여성인 우리는 대부분 일에만 목숨을 건다"면서 "해결책은 정면돌파다. 회의를 열어 요구사항을 듣고 솔직하게 답변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천연물신약에 대한 한의사들의 반발을 간과한 점이다. 손 상무는 "빨리 신약을 개발하고 싶다는 의욕에 넘쳐 천연물신약이 한의사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줄은 몰랐다"면서 "한의사들과 소통하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

한번 맡은 업무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연구에 매진, 마침내 상품으로 만들어내려는 근성은 주변의 오해와 비난도 샀다. 천연물신약을 개발에 착수했을 때에는 사내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막대한 비용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신약 개발에서 시장의 외면을 받는 분야를 개척하는 모습이 무모하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손 상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제가 좀 무뎌요. 목표가 있고,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그런 비난은 그냥 하나의 의견으로 참고만 했지요."

이처럼 손 상무가 소신을 갖고 신약 개발에 매진할 수 있던 것은 그동안의 업무 성과 덕분이다. 손 상무가 개발한 모티리톤은 위염치료 천연물신약 스티렌과 함께 동아제약의 대표적인 캐쉬카우다.

사내 분위기도 한 몫을 했다. 손 상무는 "동아제약에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는 것 같다"면서 "회사에서 진짜 조직을 이끌어 갈수 있는지. 새로운 비전을 갖고 성과를 내는 것을 보기 때문에 아직까지 여기에 남을 수 이었다"고 말했다.

 
◆여성이 만드는 유리천장 = "일하는 사회에선 능력으로 구분을 둬야지 남녀로 구분하면 안됩니다."

손 상무는 여성 스스로가 만드는 유리천장이 가장 깨기 어렵다고 꼽았다. 여성이기 때문에 당연히 받아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나 여성이라 못한다고 뒤로 빼는 방식이 여성의 사회생활을 더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이라는 것이다.

손 상무는 "저희가 입사했을 때에는 힘든 일이 있으면 후배들을 위해 갈 길을 닦아놓는다는 심정으로 버텼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면서 "조금 힘들더라도 버티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슈퍼맘 컴플렉스'부터 벗어야 한다는 것이 손 상무의 조언이다. 일과 직장을 모두 지키기 위해 애쓰기 보다 포기하고, 타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는 "가정일과 직장업무를 완벽하게 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일이 정말 좋아서 시작했다면 육아는 보모를 쓰는 등 전문가에게 맡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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