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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운명의 꼭두각시가 아니다"‥세월호가 가르쳐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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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피퍼의 치유의 심리학 "쏟아진 옷장을 정리하며"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아직껏 우리 사회는 세월호의 악몽을 이기지 못 하고 있다. 오히려 악몽을 떨치기는 커녕 갈등과 반목의 원인이 되어 세월호에 대한 집단 기억을 더욱 힘들고 아프게 한다.

2011년 7월22일 노르웨이 오슬로 폭탄 테러 이후의 과정은 국가 사회가 '트라우마 극복'이라는 과제를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해 냈는지를 잘 알려주는 사례다. 우선 총리는 "폭탄 테러에도 불구하고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를 밝혔다. 또한 심리학자들은 생존자 및 유가족 치료에 집중하고, 언론은 위로·추모 및 장기적인 해법을 찾아 나섰다. 법정도 모든 증인의 이야기를 귀 기울였으며 사건을 낱낱이 공개했다. 유가족들은 공동체의 보호 아래 상실감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이처럼 노르웨이는 최악의 불행을 훌륭히 극복함으로써 위기를 이겨내 세계인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사상자가 많은 재난속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은 큰 죄책감에 시달린다. 동료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왜 하필 내가 살아 남았을까 ?"라며 괴로와 한다. 그 때 주변에서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건네준 말에서 생존자들은 살아남은 이유와 재생의 의미를 찾아간다. 대구 지하철 참사, 경주 리조트 붕괴, 세월호 사건 등 대형 참사는 집단 기억이 돼 사회를 변화시키고 정치적 의사 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재난의 가장 큰 피해자들은 어린이, 노인, 여성 등 사회적 약자가 많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폭행의 경우 50%, 총기 난사 사고 35∼45%, 유년기 학대 및 성적 피해의 경우 30∼35%의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나 같으면 도저히 못 살아갈 것 같애"라고 할 정도로 큰 고통을 받고도 씩씩하게 이겨낸 사람들이 많다. 노르웨이 오슬로 폭탄 테러 등 대형 재난사고 후속 치료 업무를 담당한 독일의 심리학자이자 국제적인 트라우마 전문가인 게오르크 피퍼의 저술 '쏟아진 옷장을 정리하며'는 힘들고 아픈 이를 위한 치유의 심리학'이다. 이 책은 소방관, 구급대원, 경찰관 등 위기 대응 관련 종사자들의 사례를 통해 트라우마에 대처하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 준다.

피퍼는 상처 입은 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옷장이 넘어져 물건이 다 쏟아졌다고 생각해 봐요.당신은 놀라서 옷장을 일으키고 물건을 막 쑤셔 넣은 뒤 얼른 문을 닫겠죠. 옷장 속은 엉망진창일거예요. 마구 쑤셔넣은 옷가지들 때문에 닫고 또 닫아도 옷장 문은 계속 열리겠죠. 자 이렇게 생각해봐요. 우리 함께 옷장 문을 열고 물건을 다 꺼내서 살펴보는 거예요. 셔츠는 셔츠끼리, 양말은 양말끼리, 그런 뒤에 잘 개서 넣고 문을 닫아요. 이제 옷장 문은 열리지 않을 거예요. 걱정 말아요. 가끔 당신은 다시 옷장을 열고 그 안을 들여다 보기도 할 거예요. 정리하는 게 쉽진 않아요. 하지만 당신은 할 수 있어요."

예기치 않은 불행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 정신적 상처를 딛고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은 더욱 절실해졌다. 고문같은 상황은 수시로 찾아온다. 유용한 전략이 보이지 않아 출구를 못 찾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볼만 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모든 사람안에 놀라운 회복 능력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사건, 사고, 납치, 강간, 폭력, 재해, 재난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은 늘상 자기 안의 긍정적인 힘을 일깨우고, 주변에도 놀라운 감동을 선사한다.

몸의 난 상처는 의사가 치료할 수 있지만 세월호와 같은 정신적 상처는 공동체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런 편에서 이 책은 재난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시련이 닥치기 전에 응급 치료방법에서부터 피해자들을 돕는 방법을 알 수 있어 더욱 유익하다. 우리는 어느 한 순간 소중한 삶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는다면 지금의 삶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주변 사람들과 불행을 함께 이겨낼 수 있는 지혜를 가질 수 있다. <게으로크 피퍼 지음/유영미 옮김/부·키 출간/값 1만4800원>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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