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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2014년 다시 들춰내는 '이중생'…연극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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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첫 작품…28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연극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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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대가집 툇마루가 들썩인다. 검사며 판사며 높으신 분들 맞을 채비에 주인 마님부터 하녀들까지 종종걸음으로 집안 곳곳을 분주하게 오간다. 때는 바야흐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봄날이었고, 이곳은 그 유명한 이중생 각하의 집이다. 흰 양복을 차려입은 이중생 각하가 어디선가 나타나 시원한 '삐루(맥주)'를 준비하라고 주문한다.

이중생 각하가 누구냐면, 바로 권모술수의 일인자, 처세술의 달인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자기 아들을 징용군에 보내면서까지 부를 축적했고, 해방 직후 혼란한 시기를 틈타서는 무허가 산림회사를 차렸다. 이 회사를 담보로 다시 사기, 배임, 횡령, 공문서 위조, 탈세 등의 불법을 저질러 돈을 불렸다. 작은 딸마저도 미국인의 정부로 이용하면서 온갖 비행을 저지른 인물이 바로 이중생 각하다.
'천민자본주의'의 화신인 '이중생'이란 희대의 캐릭터를 만들어낸 인물은 바로 작가 오영진이다. '맹진사댁 경사', '시집가는 날' 등의 작품을 선보였던 오영진은 1949년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를 통해 일제 강점기 시대의 혼란스러운 시대상을 꼬집으며 반일과 인간의 허욕에 대한 통렬한 고발정신을 담아냈다. 아이러니하면서도 맛깔나는 대사도 작품의 묘미를 살리는 데 한몫했다. 고등학교 문학교과서나 수학능력시험 지문에도 단골로 등장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작품이다.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는 1957년 이해랑 연출, 1977년 이승규 연출에 의해 무대에 올려졌다. 2004년에는 강영걸 연출이 '인생차압'이란 제목으로 국립극단 무대에서 선보였다. 이번 공연에서는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 '그게 아닌데', '주인이 오셨다' 등의 작품을 선보였던 김광보 연출이 작품을 맡았고, 정진각 배우가 이중생을 연기한다.

연극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 중에서

연극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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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다시 만난 '이중생'은 여전하다. 자신의 만행이 세상에 알려져 위험에 처하자 급기야는 위장 자살극까지 벌일 정도다. 가짜 눈물과 가짜 슬픔, 가짜 위로가 판치는 가짜 장례식이 열리고, '이중생'은 살아있으나 죽은 몸이 되어 병풍 뒤에 숨어있다. 하지만 상속인으로 지명한 사위가 재산을 무료병원 건립에 쓰겠다고 밝히면서 전 재산을 잃게 되자 이중생은 이번에야말로 진짜로 목숨을 끊는다.
수의를 입고 병풍 뒤에서 대화를 엿듣고 있던 이중생이 사위의 재산 환원 발언에 발을 동동 구르고, 소리를 지르는 장면은 그 자체로 희극이자 비극이다. 일생을 악덕하게 살아온 이중생이 제 꾀에 빠져 순식간에 몰락하는 과정은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와 쓴웃음을 동시에 남긴다. 속물적인 가족 분위기 속에서도 신념을 지키려하는 사위와 아들 하식의 모습에서는 새로운 세대에 대한 희망을 꿈꾸게도 한다.

김광보 연출은 원작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는 정공법으로, 이 시대 다시 '이중생'을 들춰낸다. 65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작품의 질문은 유효하다. 과연 2014년, 이중생은 살아있습니까, 죽었습니까? 9월28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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