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어 교수는 파괴적 혁신 개념이 아주 적은 사례에 기대어, 그것도 그 사례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변인들을 무시하고 만들어진 빈약한 개념이라고 폄하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론이 안 통하는 사례들을 열거합니다. 크리스텐슨 교수가 파괴적 혁신에 속절없이 당한 기업으로 거론했던 시게이트나 US스틸 같은 기업들이 여전히 멀쩡히 살아있고, 이른바 파괴자들에 투자하는 것을 전략으로 삼았던 펀드가 완전히 망해버렸다는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텐슨이 2007년쯤 애플이 곧 파괴당해서 망해버릴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는 점을 들춰냅니다. 파괴적 혁신이론은 미래를 예측하는 데 쓸모가 없다는 대표적인 예로서 말이지요. 라포어 교수가 가장 마음 불편해하는 것은 이처럼 불완전한 이론이 경영현장을 넘어 학교나 정부의 변화를 요구하는 데 너무 많이 쓰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경영현장에서 파괴적 혁신의 개념이 빠르게 수용된 것은 사람들이 혁신을 설명하는 이론을 필요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요즘 일어나는 산업계의 변화는 눈 깜짝할 사이에 거대 기업들을 쓰러뜨리곤 하기 때문에 경영자들은 이런 현상을 설명할 사고의 도구를 간절히 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자동차산업의 거대 기업들은 앞으로 자동차산업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일종의 전자제품이 돼가고 있는 자동차산업에서 소비자들이 자신의 내비게이션, 전장, 심지어 차량제어 소프트웨어를 자동차업체 대신 제3의 업체에 의지하는 날이 오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소비자의 운전 취향에 맞춰 특별한 방식으로 엔진을 제어하는 애플리케이션을 파는 업체가 큰돈을 벌 수도 있습니다. 이런 앱의 판매는 구글이나 애플의 앱스토어를 통해 이뤄질 수도 있습니다. 소비자는 자신의 자동차를 언제든지 전혀 다른 사용자 경험(UX)와 기능을 갖도록 바꿀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자동차업계는 매우 낮은 부가가치를 갖는 기계 생산업체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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