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작가 이전에 개인으로서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게 참담했다. 세월호 참사뿐만 아니다. 지금까지 이런 세태는 계속 이어져 오고 있었던 거다. 80년대나 30년이 지난 지금이나 통제되고 부조리한 시스템은 그대로다. 감춰져 있던 폭력이 시각적으로 세월호에 나타난 것일 뿐이다."
빡빡머리에 안경을 쓰고 티셔츠를 입은 평범한 모습의 작가는 통탄스러운 감정을 다 드러내지는 못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려 애썼다. 하지만 얼마나 큰 고통이 또한 그에게도 전달됐는지를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세월호는 말로 꺼내기 끔찍한 사건"이라고 했다.
작가는 80년대 초반을 '최루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부산대 앞에 집이 있었고, 10대였던 나는 도망 다니는 형들을 쫓아다녔던 광경이 눈에 선하다. 어릴 적이라 놀이터와 같은 추억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이와 함께 당시 사회적 폭력이 지금까지 교묘하게 고통으로 감지되곤 한다"고 설명했다.
전시장 내에는 야밤의 숲 속을 배경으로 해 주로 가발, 박제된 새, 모형 복숭아, 의수(義手) 등 오브제들이 찍힌 사진, 비슷한 풍경에 사람이 마네킹에 둘러싸여 있거나, 깜깜한 동굴 속을 한참 헤매는 모습 등의 비디오, 황금색으로 이뤄진 산 모형이나 상아빛 긴 생머리의 가발이 여러 점 세워져 있는 설치작품 등이 비치돼 있다.
작가는 "죽은 줄 알았다고 생각했던 게 살아있고, 살아 있어야 하는 게 죽어버린 상황, 이 존재의 애매하고도 불확실한 상황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며 "암흑 속에서 가발처럼 실체 없는 오브제들을 소재로 했는데, 각각의 오브제에 담긴 의미는 특별하진 않다. 내 감정과 감각으로 느껴지는 것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작은 동굴, 큰 동굴'이라는 제목의 비디오 작품을 두고 작가는 "작은 동굴은 과거의 역사다. 밖으로 빠져 나올 수 있었을 것 같으나 사실은 더 큰 동굴로 갔을 뿐"이라며 과거와 다를 것 없는 병든 사회의 현실을 설명했다.
나라의 제사를 지낸 국사당과 기도터들이 있는 인왕산에서 작가는 도심에서 볼 수 없는 매력적인 풍경들을 봤다. 작품에 환상적인 이상향이 담긴 이유다. 사실 개인적으로 우울증을 극복하고자 새벽산행을 시작한 그는 땀을 흘리고 흔히 볼 수 없는 생명체들을 만나면서 평안함을 되찾았다고 한다. 또한 산행에서 만난 40~50대 남성들로부터 자신과 동일한 감정을 확인하기도 했다.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양아치'란 이름에 대해 그는 "선배 작가들의 예명은 마치 시대를 떠안을 듯 사명감이 들어있지만 사실 내 그릇은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양아치는 별 볼일 없는 사람, 나쁜 행동을 할 것 같지만 용기도 없는 그런 사람"이라고 했다. 작품에 대해서도 "나는 내 작품을 보는 것보다 산행을 가는 게 마음이 편하다. 그냥 봐 달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큰 의미는 없다. 제 심상과 감정에 충실한 작업"이라며 복잡한 수식을 피했다.
하지만 '양아치' 작가는 괴짜 미술가, 사회 비판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다. 크게 목소리를 높이진 않지만, 지금 작가가 살아가는 현실과 경험을 확장하고 이를 한국사회의 시대상으로 담아 독특한 작품세계를 늘 새롭게 보여주고 있다는 평이다. 그는 오는 8월과 11월 칠레와 뉴욕에서 전시를 열 예정이다. 칠레 전시는 한국과 칠레가 가진 역동적인 정치·역사적 상황과 함께 서로 다른 방식으로 탈출구를 찾는 모습을 그려낸 미디어 작품을, 뉴욕에서는 앞서 개인전에서 선보인 '미들 코리아'를 다시 소개할 계획이다. '미들 코리아'는 남북 분단이란 프레임 속 축적된 사회적인 스트레스를 풀고자 이상세계를 만들어 구성한 작품이다. 다음달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 02-720-1524∼6.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