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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정자…멈춰선 시간…자발적 유배를 가다

최종수정 2014.05.15 10:58 기사입력 2014.05.1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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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 최씨 가문의 아들 사형제가 할아버지 묘에 성묘하러 다니는 아버지를 위해 지은 용호정, 안에 들어 밖을 내다보는 맛이 일품이다.

1828년 최씨 가문의 아들 사형제가 할아버지 묘에 성묘하러 다니는 아버지를 위해 지은 용호정, 안에 들어 밖을 내다보는 맛이 일품이다.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탐진강 강바람이 싱그럽습니다. 연두빛 잎파리를 달고 반짝이는 신록의 숲, 정자에 들었습니다. 나무그늘과 바람소리를 벗하며 고즈넉하게 서 있는 정자를 거니는 맛이 각별합니다. 정자마루에 걸터 앉아 책 한권을 펼쳐 봅니다. 마루를 타고 넘어온 바람에 온 몸이 상쾌해지고 정신은 맑아집니다. 옛 선비들의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정자는 그래서 운치있습니다. 고택으로 드는 길목도 이 못지 않습니다. 저마다 다른 채도로 반짝이는 나뭇잎으로 온통 초록대궐을 이루고 있습니다. 눈을 감고 신록의 기운을 느껴봅니다. 어느새 몸은 몰론이고 마음까지도 초록으로 물들었습니다.

전남 장흥으로 떠나는 남도의 여정입니다. 여행 목적지로 장흥을 내미는 것은 진초록의 대나무숲과 고목이 뒤덮인 고택과, 탐진강 물길을 따라 강변 곳곳에 들어선 빼어난 정자들 때문입니다. 마룻바닥에 걸터앉아 책 한권 들고 앉으면 탁해진 마음과 몸을 청량하게 씻어낼 수 있을 듯합니다.
 
◇정자기행-안에 들어 밖을 보는 맛 가히 일품
탐진강변을 따라 들어선 장흥의 정자들.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동백정, 사인정, 부춘정, 용호정.

탐진강변을 따라 들어선 장흥의 정자들.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동백정, 사인정, 부춘정, 용호정.

정자라면 소쇄원으로 대표되는 전남 담양이나 '팔정팔담(八亭八潭)'이 있다는 경남 함양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장흥 탐진강 물길을 따라가며 만나는 정자들도 그에 못지않은 풍광과 운치를 뽐낸다. 사인정, 용호정, 동백정, 부춘정, 창랑정…. 알려지지 않아 찾는 이는 적지만 조용히 책을 읽거나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기에 그만이다.

먼저 사인정을 찾았다. 탐진강 하류 강진으로 건너가기 직전의 설암산 자락 도로변에 사인정이 있다. 조선 초기 이조참판을 지냈던 김필이 단종폐위 후 어지러운 세상을 한탄하며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은둔하던 정자다. 매일 단종이 묻힌 북쪽을 향해 4번 절을 하고, 정자 뒤편의 바위에다 단종의 얼굴을 그려넣었다고 전해진다. 또 사인정 뒷편 바위에는 '제일강산(第一江山)'이란 글씨도 새겨져 있다. 백범 김구가 중국 상하이(上海) 망명을 떠나던 길에 사인정에서 하룻밤을 묵어가면서 남긴 글씨라고 한다. 이래저래 사인정은 울분을 달래기는 좋은 정자인 모양이다.

탐진강변을 따라 용호정으로 향했다. 용호정이 선 곳은 강변의 깎아지른 벼랑이다. 정자로 드는 길은 한쪽이 낭떠러지라 난간까지 세워져 있다.

용호정은 느티나무 목재로 만든 8개의 원형기둥을 세우고 밤나무와 느티나무 목재만을 사용해 지은 목조 기와집이다. 특히 사방에 놓여있는 마루는 못을 사용하지 않고 만든 것으로 유명한데 현재의 정자는 47년에 걸쳐 고쳐 지은 것으로 원래보다 2칸 더 넓어진 것이다.
용호정

용호정

 
용호정은 다른 정자와는 사뭇 다르다. 대개 정자들이 풍류를 위한 곳이거나 강학의 공간으로 쓰이지만, 용호정은 바로 '효'다. 용호정은 1828년 최씨 가문의 아들 사형제가 지었다. 건너편 기역산 자락의 할아버지 묘에 3년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세 번씩 하루 30리를 걸어 성묘를 하던 아버지를 위한 것이었다.
용호정은 '안에 들어 밖을 보는 맛'이 좋다. 방 안에 들어 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밖을 내다보면 마루를 지나 초록빛으로 물든 탐진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저 고즈넉하게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더없이 빼어난 풍광이다.

탐진강 가장 상류의 정자는 동백정이다. 세조 때 좌찬성을 지낸 김린이 은퇴한 뒤 세운 정자다. 강굽이를 굽어보는 곳에 동백과 소나무로 울을 두른 조경이 빼어나다.

소나무에 쌓인 동백정을 찾아가는길

소나무에 쌓인 동백정을 찾아가는길

동백정에 들면 가장 먼저 윤이 나는 마루가 시선을 잡는다. 반들반들 곳곳에는 쓸고 닦으며 보살핀 흔적이 역력하다. 정자는 60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 서당역할을 했다. 지금도 시제를 모시는 사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저 두고 보며 모셔놓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쓰면서 다듬어온 세월이다. 그래서일까. 정자 안은 정갈하고 사람의 흔적으로 푸근하다.

이외에도 탐진강 물길을 끼고 부춘정과 창랑정, 경호정, 영귀정 등의 정자가 늘어서 있다. 더러는 누추하고, 더러는 쇠락하거나 손을 대서 옛맛을 잃은 것들도 있지만 저마다 몇가지 이야기씩을 담고 있는 곳들이다. 대부분 종중 재산이니 이용하기 전 양해를 구하는 게 좋다.
◇고택기행-숲길에 취하고 이름모를 들꽃에 반하다
고영완가옥

고영완가옥

억불산 자락 평화리에 '상선약수 마을'이 있다. 이름대로 마을에는 오래된 약수터가 있다.

평화리에서 가장 매혹적인 공간은 오래된 소나무와 배롱나무(목백일홍)를 둘러치고 있는 연못이다. 소나무(松)와 백일홍(百)이 있는 연못(井)이라 해서 '송백정(松百井)'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연못은 독립운동가이자 국회의원을 지낸 고영완씨의 고조부가 조성한 것. 연못 옆에 바짝 붙어있는 짧은 숲길 끝에 고영완 가옥이 있다. 독립운동가로 제2대, 5대 국회의원을 지낸 고영완씨의 고조부가 조성한 연못이다.

마을에서 가장 매혹적인 공간은 연못 옆에 바짝 붙어있는 짧은 숲길이다. 이 길은 고영완 가옥으로 이어진다.

입구부터 아름드리 거목이 담장 아래서 둥치를 뻗고 있다. 둥글게 휘어지는 돌계단 주위에는 이끼와 양치식물들이 촉촉한 습기로 반짝인다. 돌계단길 옆엔 밑둥이 펑퍼짐한 나무가 길쪽으로 튀어나와 있고 그 위로 다른 나무가 올타 타듯이 서로 몸을 맞대고 있다. 한쪽에는 대숲이 하늘을 가린다. 낮은 바람소리와 새소리가 줄창 이어진다. 참으로 상쾌하고 청량한 기운이 가득한 풍경이다.

관산읍 천관산 자락에 장흥 위씨 집성촌인 '방촌마을'이 있다. 마을의 깊숙한 곳에 위씨의 종갓집인 '존재고택'이 자리잡고 있다. 호남 실학의 대가 존재 위백규(1727~1798)선생의 생가이기도 하다.

고택 바깥마당에는 연못이 있으며 집 뒤로 대나무숲이 우거져 있고 그 앞에 안채가 높이 자리하고 있다. 고택에서 특히 눈여겨 볼 곳은 존재 선생이 학문을 닦던 서재다. 날아갈 듯 앉아있는 서재의 날렵한 처마의 곡선이 매우 아름답다.
존재고택

존재고택

 
방촌마을에는 이외에도 위성룡 가옥, 위백규의 생가 오헌고택 등도 옛정취를 풍겨낸다.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존재고택을 비롯해 도지정문화재 고택 3점을 포함하면 6점이 문화재 고택이 방촌마을에 있다.

장흥=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여행메모
△가는길=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동광주나들목으로 나와 광주외곽순환도로에 올라서 29번 국도를 타고 화순 쪽으로 빠진다. 화순읍을 지나 이양면소재지에서 장평 쪽으로 우회전한다. 다시 유치 방면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해 가다보면 장흥댐 쪽으로 내려가는 23번 국도를 만난다. 탐진강변의 정자는 찾아가기 쉽지 않다. 네비게이션 주소를 쳐서 찾아가는 것이 좋다. 사인정은 장흥읍 송암리 산 359번지, 동백정은 장동면 만년리 707번지, 용호정은 부산면 용반리 530번지다.
장흥정자

장흥정자

 
△먹거리=장흥에는 특유의 먹거리가 있다. '장흥삼합'이 가장 유명하다. 장흥 특산물인 한우ㆍ키조개ㆍ표고버섯을 함께 싸먹는 음식. 맛도 영양도 일품이다. 된장물회도 빼놓을 수없다. 수문해수욕장앞에 바지락무침을 맛나게 하는 집들이 몰려 있다.
장흥삼합

장흥삼합

 
△볼거리=억불산에 '치유의 숲'으로 불리는 편백숲 우드랜드가 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가 촬영되기도 한 소등섬은 바다 갈라짐 현상을 체험할 수 있다. 유치자연휴양림은 짙은 숲과 폭포, 캠핑장 등을 갖춘 장흥의 명소 휴양림이다. 또 가지산 자락의 고찰 보림사를 비롯해 비자나무 군락지를 걷는 보림사 숲길은 꼭 찾아보자. 이외에도 제암산 철쭉과 천관산 갈대밭, 천관문학공원 등 볼거리가 넘쳐난다. 장흥 노력항에선 제주성산포항까지 뱃길이 열려있다. 1시간50분이면 제주에 닿는다.
제암산 철쭉

제암산 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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