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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비늘을 건드리지 마라, 정조의 생존본능…영화 '역린'

최종수정 2014.04.25 11:35 기사입력 2014.04.2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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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열풍 잇는 새 영화 '역린'…드라마 '다모'의 이재규 감독 영화 데뷔작

역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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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충무로에 부는 '사극' 바람이 올해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종병기 활', '광해, 왕이 된 남자', '관상' 등 사극 영화가 연타 흥행을 기록하면서 올해 개봉을 앞둔 영화에 대한 기대와 관심도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화려한 멀티 스타 캐스팅, 100억원을 훌쩍 넘는 제작비 등으로 스케일을 키운 이 작품들은 역사의 한 순간으로 끊임없이 관객들을 초대하고 있다.

최민식과 류승룡을 앞세운 '명량-회오리바다'와 하정우, 강동원 주연의 '군도: 민란의 시대'가 7월 개봉 예정이다. 하반기에는 손예진과 김남길이 호흡을 맞춘 '해적: 바다로 간 산적'과 이병헌과 전도연의 만남으로 화제가 된 '협녀: 칼의 기억'이 대기 중이다. 이밖에도 한석규와 고수가 출연하는 '상의원', 신하균과 장혁의 '순수의 시대'에 이어 최근에는 이준익 감독의 복귀작 '사도'에 송강호가 출연을 확정지었다.

제작사 입장에서 '사극'은 흥미로운 장르다. 앞서 블록버스터급 사극의 성공사례가 고무적인 데다가, 무궁무진한 역사 속 인물과 사건에서 소재고갈을 돌파할 수 있다. 수익도 쏠쏠한 편이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가 내놓은 '2012년 한국영화 실태조사'에 따르면 사극 및 시대극의 평균 투자 수익률은 82.25%로, 전체 장르 가운데 최고다. 하지만 각 제작사들의 출혈 경쟁으로 훌쩍 높아진 제작비는 되려 흥행 부담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역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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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은 작품은 30일 개봉을 앞둔 '역린'이다. 현빈, 정재영, 조정석, 조재현, 김성령, 한지민, 박성웅, 정은채까지 캐스팅만으로도 관객들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제작비도 100억원이 투입됐다. 드라마로는 당시 보기 드문 팬덤을 일으켰던 '다모'의 이재규 감독이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는 조선 시대 정조가 즉위하고 1년여 뒤인 1777년 7월28일에 일어난 '정유역변'을 다룬다. 궁내에서 왕을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실제로 자객은 정조의 서고이자 침전인 존현각 지붕 위까지 침투했었다고 한다. 다행히 호위무사가 나서 참변을 막을 수 있었고, 정조는 이를 계기로 반대세력들을 숙청하고 왕권강화에 나섰다. 뒤주에 갇혀 죽은 아버지, 시시때때로 자신을 옥죄어오는 어린 계비 정순왕후,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된 정국 등 자신을 둘러쌓고 있는 모든 칼날을 견뎌내고 비로소 정조가 군주로서의 한 걸음을 딛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린(逆鱗)'이라는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역린은 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을 가리킨다. 한비자는 "용은 순하고 다루기 쉬워 사람이 길들이면 타고 다닐 수 있지만 목 아래 거꾸로 난 비늘, 즉 역린을 건드리면 반드시 죽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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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정유역변이 일어난 24시간을 담아낸다. 즉위한 지 1년 동안 끊임없이 암살 위협에 시달린 정조는 "두렵고 불안하여 차라리 살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밤잠을 설치면서 남몰래 몸을 단련하고, 책을 읽어대는 것은 왕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첫 장면에서부터 정조가 침실에서 팔굽혀펴기를 하는 모습이 등장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동이 트자마자 노론들이 심어놓은 궁궐 내 심복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급기야 어머니 혜경궁 홍씨마저 정순왕후를 음해하려 했다는 이유로 붙잡힌다. 여기에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던 신하 '상책'마저 노론의 사주를 받은 인물이라는 게 밝혀진다. 정조의 24시간은 무사하게 끝날 수 있을까.

물론 관객들은 역사적 맥락을 통해서 이 암살이 미수에 그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사극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영화에서는 정조 주변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심어놓았다. 갈 곳 없는 고아들을 살수(殺手)로 길러내는 악랄한 '광백', 세답방을 드나드는 정체모를 나인 '월혜', 어쩔 수 없이 정조 암살에 가담하게 된 '을수' 등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정조의 24시간에 수시로 침투한다. 하지만 각 인물의 사연을 플래시백(과거 회상)을 통해 일일이 설명하다 보니 극 전체의 집중도가 떨어지고, 자칫 산만한 느낌을 준다.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가 정조의 시간을 방해한다.

영상미는 빼어나다. 이재규 감독은 전작에서 보여줬던 특유의 감성적이고 섬세한 영상을 이번 작품에서도 작심한듯 선보인다. 지붕을 타고 오르는 자객들, 곤룡포를 입고 활을 쏘는 정조 등 특히 마지막 존현각에서의 결투장면에서는 눈이 번쩍 뜨일 정도다. 고풍스러운 의상도 눈에 띈다. 제대 후 복귀작으로 '역린'을 선택한 현빈은 젊고, 정의로우며, 단단한 정조를 그려낸다. 중용 23장을 되새기며 '온 정성을 다하면 세상은 바뀐다'고 확신하는 정조는, 확실히 신뢰감이 간다. 30일 개봉.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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