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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식 <인삼반가사유상>‥현대시조의 갱생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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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배우식 시조 시인.

배우식 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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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식 시인(사진)의 시조집 '인삼반가사유상'(천년의시작 출간)은 시조가 잊혀져 가는 문학장르가 아니라 여전히 새롭게 변화, 발전시켜 나갈 문학유산임을 알게 한다. 대체로 시조는 정형화된 틀로 현대적 사상 감정을 표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긴다. 그러나 인삼반가사유상의 시조들은 운율과 정조, 표현이 더욱 자유로와져 굳이 현대시와의 경계를 따질 필요가 없다.

오히려 우리 말과 가락, 미학적 상상력을 펼치기에 여전히 소용 있는 형태로 나타난다. 바로 '인삼반가사유상'은 근자의 정형시단이 이룬 수확이면서 '현대시조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오랫동안 캄캄했다. 이제 비로소 활짝 환하게 열리는 느낌"이라며 우리 말과 노래를 통한 미학적 개안을 설명한다.
배우식(63)은 특이한 이력을 지닌 시조시인이다. 그는 오랜동안 대형건설사 토목기술자로 활동하며 아프리카 리비아 및 중동 등에서 굵직한 건설사업을 수주, 경제 발전의 일익을 담당한 인물이다.

그가 본업을 내려놓고 시인으로 변신, 왕성한 창작을 펼치게 된데는 육신의 고통이 자리잡고 있다. 한참 일할 나이에 실명과 뇌종양으로 투병하다 수술과 기적같은 회복이라는 경험을 치뤘다. 이에 시인은 비로소 늦은 나이에 문학을 만나고, 시조 창작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체험해 가고 있다. 환갑이 넘으면 전문 시인들도 창작을 놓는 사례가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열정으로 비춰진다.

현재 시인은 2005년 이후 7년간 육신의 회복을 위해 은거했던 강화도를 나와 2년째 경기 용인 죽전에서 거주하고 있다. 시인은 그곳에서 매일 새벽 명상과 독서, 시조 창작에 몰두하고, 남는 시간에는 '시조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조집으로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있다'와 문학 평론집 '한국대표 시집 50권' 등이 있다. 이번에 내놓은 '인삼반가사유상'(천년의 시작 출간)은 두번째 시집이다. 2011년 시 '북어'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기도 하다. 현재 (사) 열린시조학회 회장과 시조전문지 '정형시학' 주간을 맡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있을 무렵, 그를 서울 시내 한 복판 작은 공원에서 만났다. 그리고 살아온 이력과 개인적 고통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실제로 시편 곳곳에는 개인적 육신의 고통이 녹아들어 사물의 고유한 이미지를 변주시키는 장치로 작용한다. 이어 포착된 이미지들은 그 세상과 동화되고 일체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마침내 작은 별이 활짝, 입 벌려 빛 쏟는다.//아래로 날아오는 투명한 빛의 날개/또다시 허공 어디쯤 고운 풀로 변해간다.//별빛은 꽃 피는 소리로 눈부시게 반짝인다.//빛 배인 하얀 꽃잎 공중에서 뛰어내려/저렇듯 메밀꽃밭 은하처럼 펼쳐 놓는다.//저 꽃밭, 하도 황홀해 고요도 숨 멎겠다.//('메밀꽃밭 전문)

그런 면모는 사물과 시적 자아의 내면이 서로 교신토록 하며 "도라지꽃 편지가/환하게 날"(도라지꽃 편지)거나 "골짜기 물소리 담은 어머니 편지속엔//물고기, 산새를 태우"(참으로 신기하다)는 식으로 서로 조응하고 협력한다. 이는 시인이 사유를 확장해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넓게는 서로 조응하는 관계끼리 갱생과 육체적·정신적 고양을 위해 결속해 간다.

"1, 까만 어둠 헤집고 올라오는 꽃대 하나,/인삼꽃 피어나는 말간 소리 들린다./그 끝을 무심히 따라가면 투명 창이 보인다.//2, 한 사내가 꽃대 하나 밀어 올려 보낸 뒤/땅속에서 환하게 가부좌 가만 튼다./창문 안 들여다보는 내 눈에도 삼꽃 핀다.//무아경, 흙탕물이 쏟아져도 잔잔하다./깊고 깊은 선정삼매 고요히 빠져 있는/저 사내, 인삼반가사유상 얼굴이 환히 맑다.//3, 홀연히 진박새가 날아들어 묵언 문다./산 너머로 날아간 뒤 떠오르는 보름달/그 사내 침묵 사유 만발하여 나도 활짝, 환하다."('인삼반가사유상' 전문)

인삼꽃이 피어나는 생태의 과정은 한 사내에게 포착된 순간 선정삼매가 되고, 침묵사유가 되며 결국 "나도 활짝, 환"한 삼꽃에 이른다. 이 과정은 유한한 생명이 생로병사의 과정에서 치루는 절정감이다. 여기서 '침묵, 사유, 묵언' 등의 시어들은 꽃이 피어나고 사내가 달처럼 환해지는 이미지와 겹쳐지는 동안 관념성을 벗는다. 즉 시인이 갖는 시적 완성으로 읽힌다.

이렇게 형성된 사유의 확장은 현실에 이르러 시조가 음풍농월이 아니라 현대시가 갖는 '직설의 힘'도 갖출 수 있음을 알게 한다.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 문장들이/오역되는 그 순간"(바퀴벌레)에 "한 사람의 울부짖음"(고요한 절규)을 듣고 "먹새벽, 쌀밥같은 흰 눈에/눈물 쏟아먹"는 등 실존의 고통으로 다가선다. 주변의 사물을 통한 사유가 현실에서는 타인을 돌아보고 조응한 까닭이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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