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성 가사분담 세계 최하위…하루 62분에 불과
김씨처럼 자녀 교육과 가사 부담을 홀로 떠안은 대한민국 기혼 여성들이 고통받고 있다. 과거에 비해 남편의 가사분담률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 남편들이 집안일을 '그깟 일'로 치부하며 아내 몫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사분담에 나선 남편들도 가사를 함께 책임질 일이 아닌 도와줄 일이라고 여기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물론 최근들어 여성의 경제참여율이 높아지면서 대놓고 '가사는 아내 몫'이라고 얘기하는 '간 큰 남편'을 찾긴 힘들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회정책국에서 발표한 '일, 돌봄 그리고 일상 행동들에 대한 시간사용 보고서'를 보면 우리 사회에 '부부유별(夫婦有別)'이란 족쇄가 여전함을 알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 주변에서 회사 일은 물론 가사와 보육까지 책임지는 '슈퍼 맘'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결혼 11년차 박수연(39)씨는 최근 10살 딸 아이에게 "결혼하면 엄마처럼 살아야 하냐"는 씁쓸한 얘기를 들었다. 박씨의 직업은 남편과 같은 공무원이지만 퇴근 이후 생활은 전혀 딴판이다. 박씨는 오후 6시30분이면 집에 도착한다. 반면 남편은 주 5일 중 4일을 야근한다. 그나마 남편이 일찍 들어오는 하루는 영어공부를 하기 바쁘다. 그렇다보니 박씨에게 직장 내 회식은 딴 나라 얘기다. 남편이 일찍 퇴근하는 날, 어쩌다 한번 잠깐 얼굴을 비출 수 있다. 가사 일과 함께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다니는 두 아이를 챙기는 일도 모두 박씨 몫이다. 박씨는 "남편은 마치 혼자 회사에 다니는 것처럼 생색을 내면서 집안일과 육아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며 "남자가 직장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면서 회사 일에만 전념해 말다툼도 많이 했지만 사고방식은 바뀌지 않더라"며 답답해했다. 그는 "남편이 변하지 않으니 혼자 완벽하게 하려고 더 아등바등하며 사는 것 같다"며 "주변에선 '슈퍼 맘 콤플렉스'를 버리라고 하지만 사실 슈퍼 맘 콤플렉스가 나를 버티게 한 힘 같다"고 토로했다.
◆가사는 '공동 책임'…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필요= 2014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기혼 여성이 가사 고통에서 벗어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가사를 도와줘야 할 일이 아닌 공동 책임질 의무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회 전반으로 가족 친화적인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장시간 근로 관행도 개선돼야 한다. 김금자 롤팩 대표는 "우리나라의 육아나 여성정책이 다른 나라에 비해 그렇게 뒤지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제도와 현실 인식과의 괴리가 큰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장시간 근로 관행을 개선하고 정시퇴근 문화를 확산하는 등의 캠페인을 통해 가족친화적인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들이 완벽주의를 버려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김양미 베스트비즈ㆍ와우몰 대표는 "신혼 때 남편한테 세탁 후 빨래 널기를 맡겼더니 옷을 털지 않고 그냥 널더라. 그래도 일단 참고 지켜봤더니 지금은 꽤 잘한다"며 "남편이 아내처럼 가사 일을 완벽하게 하긴 쉽지 않다. 아내가 완벽주의를 버려야 가사분담이 손쉬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맞벌이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가사분담 시간이 여전히 제자리인 것은 여성의 인식이 바뀌지 않은 탓도 있다"며 "가사, 육아는 여성이 전담할 몫이 아닌 부부가 함께 책임질 의무다"고 꼬집었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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