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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현석 "이제 그리스 로마신화라는 표준적 상상력을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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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방현석 "이제 그리스 로마신화라는 표준적 상상력을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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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예술계에서 그리스 로마신화와 관련된 작품은 고정 레파토리에 해당된다. 실례로 작년 국립극단에서는 '안티고네', '단테의 신곡' 등 그리스 로마신화를 원형으로 한 연극이 공연됐듯이 다른 장르에서도 예외 없다.

서구의 이야기산업은 그리스 로마신화를 원형으로 삼는다. '반지의 제왕'처럼 북유럽신화를 차용한 영화가 있기는 하다. 따라서 그리스 로마신화는 수천년 서구 사회가 반복해온 예술적 경로다.
서구는 자신들의 이야기가 낡고 지칠 때마다 오리엔트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곤 했다. 사실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아바타' 역시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 속 생성과 변환을 주관하는 신 '비슈누'가 지상에서 여러 화신(아바타)으로 나타나 인간을 구원해 주는 내용을 차용한 최신 버전이다.

라마야나는 서양의 '일리야드', '오딧세이'에 비견되는 고전이다. 특히 '서유기'의 원형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인도나 인도차이나의 수많은 사원 등에는 라마야나 신화가 춤, 조각, 회화 등 여러 예술 형태로 표현돼 힌두문화의 꽃을 이룬다.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도 라마야나 이야기는 다양하게 재해석, 예술 형태로 승화돼 있다.

광대한 대륙 '아시아'에는 '라마야나' 신화에 견줄만한 이야기의 원형이 숱하게 많다. 때묻지 않고, 낡지 않은 이야기들이 새로운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리스 로마신화라는 서구 중심의 표준적 상상력에 길들여져 왔다. 서구의 세계관은 오리엔탈리즘을 외치면서도 결코 오리엔트를 숭배하지는 않는다. '오리엔탈리즘'은 오리엔트 밖에서 태어난 세계관으로 오리엔트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제대로 발현되지 않은 아시아정신과 에너지를 찾아내는 것이 인류문명사의 숙제다.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소설가 방현석(53, 사진)은 1994년 김남일 등 여러 동료소설가와 함께 베트남에 첫 발을 내디뎠다. 중국, 러시아, 베트남 등 체제가 다른 국가들의 빗장이 막 열리던 시절,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이들은 베트남에 첫 발을 디딘 이후 20년째 아시아 전역을 순례 중이다. 아시아에서 이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나라는 없다. 첫 여행 후 이들은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 모임, 사단법인 '아시아문화네트워크', 아시아 문학을 소개하는 계간 '아시아'로 이어오며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방 작가는 "오랫동안 아시아를 순례하면서 아시아의 가치는 무엇인가 자문하게 됐다"며 "우리는 아시아라는 하나의 범주로 이해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달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시아의 이야기는 각 지역마다 같은 이야기가 전혀 다른 버전으로 재창조되기도 하고,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같은 버전으로 엿보일 정도로 서로 이어지며 순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 작가는 "이제 우리는 낡은 그리스 로마신화와 서양 얘기에 지쳤다"고 단언했다. 이어 "서양인들조차 아시아에서 광대한 이야기의 원천을 찾아 헤메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방 작가는 최근 동료 소설가 김남일(57)과 더불어 '백개의 아시아'(전 2권,아시아 출간)를 집필했다 . 방 작가는 "아시아에는 그리스 로마신화에 비견할 만한 스토리자원이 어디든 무수히 널려 있다"며 "'백개의 아시아'는 아시아에 이르는 백개의 관문"이라고 강조했다.

이 책은 '방글라데시의 우유배달부'로 시작, '라마야나'와 더불어 인도의 3대 서사시 중 하나로 꼽히는 '마하바라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화로 알려진 수메르의 '길가메시 서사시', 페르시아의 장편 서사시 '샤 나메', 일본을 대표하는 민족 신화 '이자나기' 등 100개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한국 이야기로는 '주몽신화' '바리공주' '처용설화'가 실렸으며 각 이야기는 서로 이어지고 순환하며 다양한 상상력을 불러 일으킨다.

이처럼 '백개의 이야기'는 서구와는 전혀 다른 상상력의 세계로 독자의 발길을 이끄는 보기 드문 시도로 평가된다. 방 작가는 "우리는 그리스 로마신화에 길들여진 세계관이 송두리째 흔들리길 기대한다"며 "비록 첫발은 만용처럼 시작됐지만 보다 많은 이들이 공감해 나갈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어 "한국문학의 무대도 중국, 몽고 등 아시아를 넘어 유라시아대륙으로 확장되고 있다"며 "21세기 아시아가 세계 중심 무대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시각으로 아시아를 바라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어쨌거나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벼든 꼴이 됐다. 이렇게라도 만용을 부리지 않으면 영영 세월만 보낼 것 같아서 감히 나서서 매를 번다. 이번 책도 독자들이 흥미롭게 이야기의 숲을 산책하며 상상의 날개를 펼치도록 안내한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방 작가는 "앞으로 내 소설속에도 더 많은 아시아적 스토리와 삶이 담길 것"이라며 "국적이 다르지만 친구가 돼 우리를 크고 작은 정신의 숲으로 안내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향후 작업에서는 이들과의 소통과 연대를 추구해 나갈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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