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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과거급제자 절반이 평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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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출세의 사다리' 저자 한영우 교수

통설에 맞선 70대 노학자, 집념의 40년 조선탐구
지난 40년 동안 조선 사회에 대한 탐구와 성찰을 꾸준히 해 온 노학자가 조선왕조 500년간 배출된 문과(대과) 급제자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통해 조선 왕조 성격을 규명한 역작이 나왔다. 과거제를 통한 합리적 인재 선발 시스템이 작동한 조선은 폐쇄적이면서도 개방적인 2중적 사회였음을 밝혀낸 것이다.

조선 왕조 500년의 사회성격 논쟁을 주도해 온 저자의 이 같은 관점은 사실 새로울 게 없다. 저자 한영우 교수는 지난 70년대부터 학계의 통설에 맞서서 조선 사회가 의외로 개방적이고 유연했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한국 사학계의 원로인 한 교수가 이번에 펴낸 신간 <과거, 출세의 사다리>가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이 작업에 들인 70대 노학자의 열의와 집념이다. 저자는 지난 5년 동안 조선 시대에 배출된 문과(대과) 급제자 1만4615명 전원의 신원을 조사, 분석하는 방대한 작업을 했다. 한땀한땀 바느질을 놓듯한 작업 끝에 원고지 1만2000매의 결과물을 4권의 책으로 펴냈다.
"조선왕조를 이끌어 간 정치엘리트가 문과급제자들인 점은 분명하지만 이들에 대한 연구는 통계적 수치도 제시하지 않은 채 근거가 박약한 자료를 가지고 양반특권층이 세습했다고 주장하거나 최근 전산화된 과거급제자 명단만을 이용해 어느 성관(성씨와 본관)에서 엘리트층이 배출됐는가를 조사해 통계를 제시하는 데 그쳤어요."

그러나 이런 접근 방법은 약점과 한계를 지녔고, 조선사회가 지닌 신분적 개방성을 크게 왜곡하는 결과를 빚었다. 한 교수의 작업은 초대 왕인 태조부터 마지막 왕인 고종까지 27명의 왕대별로 전체 급제자와 신분이 낮은 급제자 명단을 분류하고, 신분이 낮은 급제자는 어떤 이들인지, 그들은 벼슬이 어디까지 올랐는지 등을 세세히 분석하는 데까지 미쳤다. 이를 위해 전산화된 과거급제자 명단인 <문과방목>과 <씨족원류> <만성대동보> 등의 족보, <조선왕조실록> 등의 자료들을 면밀히 살피고 대비했다.

그렇게 해서 얻어낸 결론은 조선이 양반이라는 특권층이 권력과 부를 세습적으로 독점하고 평민과 노비를 지배했다는 통념과는 다른 사회였다는 것이다. 특히 조선 초기에는 신분이 낮은 급제자의 비율이 전체의 40~50%에 이를 정도로 과거는 힘없고 약한 사람들에게 '출세의 사다리'였다는 것이다. 16세기 후반 이후부터 양반의 벼슬 세습이 굳어지는 문벌사회가 되면서 양반ㆍ중인ㆍ평민의 계층구조가 성립하지만 18세기 후반 영정조 때 다시 고른 인재등용과 신분상승 운동으로 양반 신분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지난 12일 서울 관악구 낙성대의 한 아파트에 마련된 그의 서재(湖山齋)를 찾아간 기자에게 한 교수는 안방에 높이 쌓여 있는 족보 더미를 가리키며 "저 족보들을 하나하나 비교하고 대조해가며 파고 드느라 노안(老眼)이 깨나 고생했다"고 웃음을 지었다.

올해 76세인 그가 칠순을 넘긴 5년 전 이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것이 찬탄을 자아낸다. "돌이켜보면 혼자서 이 일을 해냈다는 것이 스스로 믿어지지 않는다. 지난 5년 동안 이 일에 몰두하면서 중도에 접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고, 내 체력으로 끝을 맺을 수 있을까 스스로 회의를 품었다."

자신이 해 놓고도 스스로 믿기지 않을 만큼 고된 작업이었던 듯하다. 그럼에도 그를 끌고 왔던 것은 누군가 꼭 한번은 해야 할 작업이라는 신념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조선 사회의 성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자기 자신이 스스로 매듭을 지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저자의 5년의 작업이지만 사실은 지난 40년간의 연구의 한 연장이며 그 결산이랄 수 있다. 한 교수가 그려온 조선사회의 세밀화를 완성시키는 작업인 셈이다.

한 교수는 "조선왕조가 500년 이상 장수한 비결은 지배 엘리트인 관료를 세습으로 보장하지 않고 능력을 존중하는 과거시험 제도로 부단히 하층 사회에서 충원했기 때문"이라며 "공부를 열심히 하면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탄력적 사회를 유지하려 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조선시대를 양반의 폐쇄적 독점사회로 본 조선 후기 실학자들에 대해서도 "정치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소외됐거나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현실의 부정적 측면을 과장해서 개혁의 당위성을 끌어내려는 속성이 있다"며 "이런 사람들의 노력으로 사회가 정화되고 진보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역사의 진실을 흐리게 만드는 측면도 없지 않다"고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조선이 500년의 역사를 유지했던 것은 조선이 탄탄한 설계와 운영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73년에 내놓은 저의 첫 저서가 <정도전 사상 연구>인데, 정도전이란 인물을 들여다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아요. 당시는 유신 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때였는데, 정도전이 제시한 조선의 건국이념은 그야말로 놀랍더군요. 600년 전의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철저한 애민정신으로 나라를 세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우리가 조선왕조를 잘못 봤구나, 조선을 새롭게 봐야겠다, 그러자면 조선사회의 근간인 신분제도부터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투철한 민본과 애민의 이념으로 개창돼 당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500년 장수를 누린 왕조가 양반이 독식하는 반(反)민본국가일 수는 없는 겁니다."

그는 조선이 '뿌리가 깊은 나라'였음을 아는 것에서부터 식민사관의 진정한 극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금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는 것에 분개하지만 그 전에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의 역사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부터 돌아봐야 해요. 그러자면 지금의 우리의 뿌리인 조선시대부터 제대로 알아야죠."

한 교수가 내놓은 조선의 과거제를 통한 조선사회 탐구 결과는 결국 그가 쓴 '다시 찾는 우리 역사(1997년)'라는 책 제목처럼 우리 역사를 온전히 되살리려는 여정의 한 일부일 것이다.




이명재 기자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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