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_progress

아시아경제 최신 기획이슈

벤처투자 계약 '갑(甲)의 횡포?'···연대보증·조기 회수 요구까지

최종수정 2014.02.15 19:57 기사입력 2014.02.14 12:06

댓글쓰기

[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서울 유명대학 출신 A씨는 학창 시절 동기와 모바일 앱 개발 업체를 창업했다. 초기 투자 자본 유치를 위해 알음알음 찾아간 한 벤처캐피털(VC)과 1시간 정도의 미팅을 가졌다. 별다른 질문도 하지 않았던 벤처캐피털 심사역은 그날 저녁 이메일로 계약서(term sheet)에 회신하면 바로 투자를 결정하겠다고 통보해왔다. 그가 보낸 계약서에는 '투자금액 누설시 출연금을 바로 회수한다' '투자금 조기 회수시 즉각적인 상환을 요구하고 투자 이외 별도 지연 배상금은 연 복리 20%를 요구한다' 등의 조항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 모바일 게임사 대표 B씨는 개발 자금이 필요해 벤처캐피털 몇 곳을 찾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사업 모델은 좋은데 실패할 경우 원금 회수를 보장받을 방법이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일부는 "일정 기간 내 IPO(기업공개)를 하지 못할 경우 연 복리 30% 이자를 약속하면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제안했다. B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서에 싸인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벤처 육성의 밑거름이 돼야 할 벤처캐피털이 되려 창업 벤처의 '절대 갑(甲)'으로 군림하고 있다. '모험 자본'을 제공하기보다 '안전 수익'만 쫓는 갑의 편향된 태도가 못마땅하지만 절대 을(乙)로 전락한 벤처들은 불리한 계약 조항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사업이 실패할 경우 원금 회수를 보장받기 위해 담보와 보증을 이중삼중으로 요구하는 것은 다반사고 IPO까지 채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 투자 유치를 고려했던 한 스타트업 대표는 "벤처캐피털이 투자할 때 돈을 회수할 수 있는 조건을 가장 먼저 요구한다"며 "연대보증을 거는 것은 물론이고 IPO나 인수합병(M&A)을 하면 원금에 이자까지 붙이는 것이 다반사"라고 지적했다.

벤처투자 중 상당부분은 보통주가 아닌 상환전환우선주(RCPS) 형태로 이뤄진다. RCPS는 회사가 청산하거나 배당할 때 우선적으로 자금을 받아갈 수 있다. IPO가 어려워지면 벤처캐피털은 원금과 이자를 받고 빠져나올 수 있어 위험 부담이 낮다. 반면 벤처는 사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자금을 조기 상환해야 하는 부담이 크다.
일각에서는 안전장치가 어느정도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벤처캐피탈이 투자를 확대해 더 많은 벤처들이 혜택을 받으려면 어느 정도 수익을 따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 엔젤투자자는 "벤처투자는 사실상 직감으로 이뤄지는 데다 자기자본으로 수억에서 수억에서 수십억씩 쏟아붓기 때문에 수익률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안전장치가 과도하면 벤처 육성이라는 대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고 반박한다.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장은 "좋은 기업을 발굴해 성공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벤처캐피털의 역할"이라며 "안전만이 걱정된다면 투자를 안하는 게 정답"이라고 꼬집었다.

정부도 벤처캐피털의 불공정행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벤처캐피털에 대한 관리 감독을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청은 투자금 조기 회수를 차단하기 위한 표준규약 개정(중소기업창업투자조합 표준규약 개정안)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IPO 실패 등을 이유로 투자계약이 만료되기 전에 투자금을 조기 회수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다만 연대보증 강제를 제재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박종찬 중소기업창 창업벤처국 과장은 "연대보증은 투자계약 체결 과정에서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이 협의되는 사안"이라며 "법으로 제재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간격처리를 위한 c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