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등 약자 위한 로펌..'공감' 설립 10주년 소개한 신간 '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
'공감'은 2004년 1월 첫 문을 열었다. "법은 테두리요, 열려 있어야 한다. 테두리 밖으로 밀려나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빼앗긴 이들을 위해 그 경계를 넓히고 모두를 품어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뜻있는 변호사들이 뭉쳤다. 계기는 2002년 사법연수원에서 박원순 현 시장의 특강을 통해서였다. 당시 박 시장은 "잘나가는 로펌 변호사가 되려면 여전히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 이런 레드오션 말고 블루오션을 소개하겠다"며 공익 전담 변호사가 될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그 말은 염형국 변호사의 마음을 움직였고,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로 있던 박 시장은 재단 내 공익변호사기금을 마련해 '공익변호사 팀'을 만들어줬다. 사법연수원 홈페이지에 낸 "가난한 이들의 로펌을 만들겠습니다"라는 구인공고를 보고 김영수, 정정훈, 소라미 등 세 변호사들이 추가로 합류했다.
'공감' 이전에도 우리사회 가장 약하고 낮은 곳을 위해 활동한 선배들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독립 운동가들을 변호했던 김병로, 이인, 허헌 등의 변호사들은 사실상 인권변호사 1호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형사변호공동연구회를 만들어 일반 형사사건을 통해 번 수임료를 활동비로 삼아 독립운동이나 민중인권 사건을 무료로 맡았다. 독립 이후 유신시대에는 그야말로 인권변호사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군부의 탄압 속에서도 1986년 정의실천법조인회(정법회)라는 최초의 인권변호사 상설조직이 만들어졌다. 정법회는 이후 다시 민주화 열기에 발맞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인모임(민변)으로 보다 광범위하게 발전한다. '공감'은 여기에 최초의 비영리 전업 공익변호사라는 의미를 더한다.
장애인, 성적 소수자, 이주 노동자, 비정규직, 난민, 철거민, 노숙인들은 공감의 단골들이다. 2011년 우리 사회를 공분에 떨게 한 '도가니 사건'의 경우를 보자. 2005년 청각장애인 특수학교인 인화학교의 교직원이 수년간 장애 학생들을 성폭행한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당시 법원은 솜방망이 처벌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장애 학생들의 인권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없었다. 공감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재단 시설이 공공성과 투명성을 갖게 하도록 사회복지사업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여겼고, 2007년 공익이사 선임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다. 인화학교 역시 법인 설립자와 친척들이 학교의 주요 직책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이밖에도 무분별한 해외 입양에 브레이크를 건 입양특례법 개정, 아시아 최초로 시행된 난민법 제정,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을 반영한 학생인권조례 통과 등을 이끌면서 '공감'은 기자회견, 공청회 발제 등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입법 운동 외에도 다양한 공익 소송에 변호인으로 나섰다. 주민소송제도 도입 이래 최초의 승소로 기록된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 대리모로 이용당한 베트남 여성의 '씨받이 사건' 손해배상청구소송, 장애인 참정권 차별에 대한 구제소송, 이주노조 위원장 강제출국에 맞선 헌법 소원 등은 승소나 패소를 떠나 우리 사회의 인권 사각지대를 드러내고 그 경계를 확장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인권 감수성'에 취약한지 깨닫게 된다. 더불어 독자들에게도 같이 사는 사회구성원들을 편협하거나 편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지난 10년간 공감을 이끌어온 염형국 변호사는 말한다. "도처에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인권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들쑤시지 말고 사는 게 속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은 물론 타인에 대해서도 쉽게 체념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자연과 더불어 모두가 세상의 한 부분이고 서로 연결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에 눈 감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외부 공간으로 추방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 부키 / 1만4000원)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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