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년의 긴 역사를 가진 화학회가 공연히 세간의 이목을 끌기 위해 별난 행사를 개최했던 것은 아니다. 탄소문화 사업은 우리 과학기술계를 대표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화학회가 긴 안목으로 시작하는 새로운 사회공헌 노력이다. '화학'과 '화학산업'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러나 고질적인 분열과 갈등의 늪에서 우리 사회를 구해내기 위해 절박하게 필요한 과학기술과 인문사회의 실질적인 융합을 실천에 옮기는 것도 중요한 목표다. 화학회가 단순히 화학분야의 학술활동에만 안주해서는 우리 사회의 전정한 발전에 기여할 수 없다는 현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실제로 생명에게 탄소의 화학적 역할은 상상을 넘어선다. '생명의 책'으로 확인된 DNA는 물론이고 모든 생명체가 생존을 위해 필요로 하는 영양소의 거의 대부분이 탄소 화합물이다. 자연을 화려하게 만들어주는 찬란한 오색 잔치도 탄소 화합물에서 비롯된다. 심지어 지구를 살아 숨 쉬도록 만들어주는 햇빛에도 불사조(不死鳥)와 같은 탄소의 촉매 역할 때문에 가능해진 핵융합의 흔적이 담겨있다. 외계 생명을 찾는 일도 탄소의 화학적 다양성을 확인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생명은 탄소가 있어서 가능했고, 탄소 덕분이 더욱 신비로워진 것이다.
인류 문명에서 탄소의 역할도 놀랍다. 농경과 목축도 우리에게 필요한 탄소 화합물을 효율적 생산을 위해 농작물과 가축을 활용하는 인공적인 기술일 뿐이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준 에너지와 소재의 활용 기술에서도 대부분 탄소를 이용한다. 미래의 기술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나노기술(NT)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 탄소를 포기하자는 저(低)탄소와 탈(脫)탄소는 지구를 살리는 일에는 도움이 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우리 스스로의 정체를 밝히고 생존을 지키려는 성스러운 우리 스스로의 노력을 포기하자는 패배적이고 파괴적인 주장이다.
탄소문화상 대상은 그런 문진의 자세를 직접 실천하는 것이다. 인간 중심의 사회학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과학적 합리성을 정착시킨 김경동 교수와 과학적 합리주의를 근거로 하는 생태학적 세계관을 강조한 박이문 교수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 바로 그 시작이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ㆍ탄소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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