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 '중요 법안' 외에 공정거래위원회가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7개 더 있다. 집단소송제 도입, 중간 금융지주회사 의무화,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등을 위한 법안이다. 박 대통령의 '중요 법안' 목록에 오르지 못했다고 중요하지 않거나 덜 중요한 것은 없다.
돌아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이미 국회를 통과한 법안도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입법 취지가 희석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일감 몰아주기 방지의 경우가 그렇다. 이달 초 공정위가 입법예고한 시행령 개정안에 '효율성, 보안성, 긴급성'이라는 예외요건이 들어갔다. 효율성 개선 효과가 있거나 정보보안ㆍ긴급성 측면에서 불가피한 일감 몰아주기는 규제대상에서 빼준다는 것이다. 일감 몰아주기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돼 온 삼성에버랜드, 현대글로비스, SK C&C 등이 그 혜택을 볼 것 같다.
14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에는 속하지 않지만 내용상 경제민주화에 직결되는 다른 법안이 후퇴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상법 개정안이 대표적인 예다. 이 법안은 일정 규모 이상 대기업에서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대주주 의결권은 3%까지만 인정하는 것을 비롯한 여러 가지 기업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지난 8월 10대그룹 총수를 만난 자리에서 "재계의 우려를 잘 알고 있고, 신중히 추진하겠다"고 했다. 국회의 처리 과정에서 새누리당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내린 것이나 다름없다.
박 대통령의 마무리 선언 이후 정부와 여당이 경제민주화에서 뒷걸음질하는 동안 기업과 시장의 현실은 더 많은 경제민주화의 지속적인 추진이 불가피함을 웅변해왔다. 이 점에서는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 입안자였던 김종인 전 새누리당 행복추진위원장이 한 말이 옳다. "경제민주화는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다. 자꾸 진화해서 변화하는 시장경제에 맞춰나가야 하는데, 뭐가 마무리됐다는 거냐?"
이주명 논설위원 cm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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