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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유진룡 문화장관의 '원론'이 수치스러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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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부석사 불상 반환 논란은 문화재를 지키는 우리의 태도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부석사 불상은 지난해 10월 쓰시마시의 사찰 간논지에서 한국인이 절도, 국내로 반입됐다. 불상은 고려시대 부석사에서 제작된 것으로 나타난다.

범인들은 한국 문화재청과 대전지방경찰청에 의해 붙잡혔고 현재 불상은 국내에 보관돼 있다. 일본은 범인이 잡히자 반환을 요구했고 부석사는 이에 맞서 법원에 이전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해 지난 2월 승소했다. 당시 대전지방법원은 부석사가 "고려 말기인 14세기말 왜구가 불상을 약탈했다"며 소유권을 주장한 것과 관련, "일본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소장했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일방적으로 반환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이를 두고 일본은 지난 27∼28일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한중일 문화장관 회의'에서 외교적 이슈로 삼아 논란을 일으켰다. 27일 장관 회의 일정 중 하나인 한일 문화장관 양자회담 직후 시모무라 하꾸분 일본 문부과학상은 자국 언론인들과의 간담회에서 "(유진룡 한국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서산의 부석사 불상 반환 요구에 (한국)정부 차원에서 협조하겠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고 밝혔다. 이에 아사히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들이 관련 내용을 일제히 보도하면서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별다른 해명, 설명도 없던 유 장관은 28일 '광주공동합의문 채택' 말미에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발언 진의에 대해 "한국, 일본 기자들에게 양자회담 자리에서의 발언을 재확인하고자 한다"며 "(그 발언 내용은)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다. 서산 부석사 불상 건은 사법당국의 판단을 기다리는 중이다. 판단이 내려지면 이를 존중해야 한다. 다만 도난, 약탈 등의 문화재에 대해서는 국제 규약 등이 있다. 우리 정부는 규범에 따라 원칙, 합리, 이성적으로 행동하겠다고 답했다"고 겨우 답변했다. 또한 "그저 원론적 답변에 지나지 않다"고만 되풀이했다.

일본 언론 보도 및 유 장관의 공식 해명 이후 "일본 장관의 아전 인수", "일본 언론의 과잉", "일본의 성과 부풀리기"라는 다양한 해석이 회담장 안팎에서 흘러나왔다. 그러면서도 한중일 3국의 문화교류 확대를 위한 자리가 '부석사 불상'이라는 이슈를 통해 '외교쟁점화'시킨 일본의 꼼수에 말려 들었다는 의견으로 분분했다.
다들 유 장관 발언을 일종의 접대성 멘트로 읽는다. 반환에 방점을 찍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시모무라 문부상 및 일본 언론이 "반환 취지"로 받아 들이며 논란을 삼는데도 한국 문화체육관광부와 유 장관의 대응은 미온적이기 그지 없었다. 굴욕적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운 대목이다. 시모무라 문부상의 발언은 회담 성격 상 외교적 결례일 뿐 아니라 문화협력 증진을 원하는 동북아 3국민에게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그런데도 우리 측의 항의나 적절한 대응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가 없다.

게다가 일본 문부상은 28일 기자회견 중 자국 기자의 질문 하나를 받고 황급히 귀국해야한다며 일본 문화재청장을 자리에 앉혀놓고 10시15분께 자리를 떴다. 귀국해야할 사정에 대해서는 별도의 언급은 없고 급한 일이라고만 양해를 구했다. 질문을 준비중이던 한국 기자들이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공식 행사 도중 자리에서 사라진 것은 '곤혹스런' 질문을 피하기 위한 술책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는 이유다.

일본은 우리 문화재 6만6824점을 강탈해 갔다. 공식적인 것만 그렇다. 실제로는 수백배가 넘는 유물과 유산들이 일본 곳곳에 널려 있다. 대부분 구한말,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당시 강제 유출돼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등지에 4만2325점, 독일은 쾰른동아시아박물관 등지에 1만727점을 지니고 있으며 20개국 579개처에 15만2915점이 약탈당한 문화재가 돌아오지 못 하고 있다.

유은혜 의원(민주당)은 "기증, 구입, 정부 간 협상 등을 통해 최근 5년간 환수한 실적은 27건(4개국 2599점)에 불과하다"며 "정부는 정부 간 협상이나 유네스코 협약, 국제법 검토 등 적극적인 노력과 함께 민간단체들의 지원 및 협조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우리 문화재 환수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올해 환수 건수는 한국전쟁 중인 1951년 미국으로 불법 반출된 호조태환권(戶曹兌換券) 인쇄 원판 반환 등 총 4건에 불과하다. 그나마 나머지 3건은 민간이 사들였을 뿐이다. 비운의 문화재들은 우리가 국력이 없고, 강대국에게 굴종하면 국가의 유산이 어떻게 강탈 당하게 되는 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또 빼앗긴 유산을 돌려받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도 잘 알려준다.

유네스코 문화재 협약에는 강탈, 도난 당한 유물들은 반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유네스코 협약에 따라 약탈 당한 문화재를 조건 없이 돌려주는 나라는 없다. 그에 상승하는 외교적 댓가를 치루거나 긴박한 이해가 작용할 때 마지 못해 제스처만 부리기 일쑤다. 지금 유네스코 협약이 정당하고 지켜져야 하는 것이라면 모든 반출 문화재는 돌아와야하는 게 맞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으면서 부석사 불상에 대해서는 역사적 사실관계조차 따지지 않고 반환만 요구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애시 당초 36년간 우리 국토와 민족을 유린하고도 반성과 사과도 모르는 민족이므로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무리다. 하지만 무례하고도 불순한 태도에 대해 미온적 대응은 굴욕적인 느낌마저 지울 수 없다.

이번 '한일' 양자 회담은 지난해 일본 아베 정권 출범 이후 공식적인 첫 장관 회담이다. 이런 자리에서 일본이 정치ㆍ외교적 파장을 불러일으킨 데는 모종의 계산이 깔려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회담장 주변에서는 일본이 아베 정권 이후 첫 공식적인 자리에서 '부석사 불상'문제를 이슈화시키려 시도한 것은 사전 전략인 것으로 해석한다.

현재 한일 양국은 역사 왜곡 및 독도문제 등으로 경색돼 있는 가운데 극우 성향의 아베 정권은 평화헌법 폐기 및 군국주의 추구, 군사 재무장 등 동북아 평화체제를 위협하는 일련의 행동에 돌입한 상태다. 따라서 일본 문부상은 문화장관회의에서의 불상 논란을 정치ㆍ외교문제화시켜 자국민 선동 도구로 삼았을 수도 있다.

여기에 말려들은 유 장관과 우리 정부의 어설픔을 지적 안할 수 없다. 양자회담 중 일본 문부상이 부석사 불상 문제를 제기할 때 당연히 우리 약탈 문화재 반환을 먼저 요구했어야 마땅하다. 또한 무례한 일본에 따끔한 지적과 분명한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옳다. 그런 배짱조차 없다면 비굴한 것에 다름 아니다. 말을 해야할 때 말 하지 않고, 분명한 태도를 보여줘야할 때 '원론'이나 읊고 있으면 그게 비굴한 것이고, 나라로서는 국치가 된다.

체면이나 원론이 국가 이익을 다투는 국제무대에서 무슨 마법을 부릴 것도 아니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요술일리는 없다. 당당함과 위엄, 품격을 갖추고 부당한 언사에 대응하는 것이 명백한 태도다. 부석사 불상은 명확히 역사적 사실관계 및 증거에 입각해 처리해야 한다. 상식적으로 내 물건이 이유도 알 수 없이 남의 집에 있다면 물건이 왜 그곳에 있는 지를 밝히지 않는 한 그것은 내 물건이다. 내가 이유를 모르는 걸 증명할 수는 없다.

일본은 부석사 불상이 자신들의 소유라고 주장하려면 역사적 사실관계와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증거가 없고, 역사적 사실관계가 미흡하다해도 마찬가지다. 일본 측 논리를 인정한다면 우리는 약탈 당한 문화재를 돌려달라고 주장할 근거가 없는 셈이다. 이건 국수주의적인 태도가 아니라 상식 수준에서 얘기하는 말이다.

유 장관의 '원론'에는 약탈문화재를 먼저 돌려줘야한다는 전제가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비굴함이 되고, 국치가 되는 것이다. 도난 당했다는 시각에서 보면 원론은 돌려주는 게 맞다. 결국 일본이 억지 부릴 근거를 준 데는 분명한 요구와 전제, 당당한 태도의 결여에서 나온다. 국제 협약이니 하며 점잖은 수사를 펼치며 그럴싸한 교제나 하라고 장관 자리에 있는 게 아니다. 비열하고, 무례하고, 염치 없는 일본에 만만하게 낚이는 것이 수치며, 비굴함이며 결과적으로 국익이 반하는 행동이다. 추후 일본의 교활함에 당당한 자세와 지혜로 맞서길 기대한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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