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보관된 조선왕조실록을 보면서 '기록의 위대함'을 실감했던 적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태조 이성계부터 제25대 철종까지 472년 동안의 역사를 기록한 책으로 세계 역사상 어떤 기록물과도 견줄 수 없는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역사를 기록한 사례가 없기도 하거니와 내용 면에서 독립성과 신뢰성이 높아 사료로서의 가치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엄정한 기록을 위해 사관들이 얼마나 노력했는가에 대해서는 무수히 많은 일화가 전해진다.
기록의 내용뿐만 아니라 기록을 보관하고 후대에 남기는 노력도 철저했다. 임진왜란 당시 춘추관, 충주사고, 성주사고 등이 모두 불탄 와중에 전주사고본이 보존된 것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관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전쟁이나 병화를 피할 수 있도록 강화도 마니산, 경상도 봉화의 태백산, 평안도 영변의 묘향산,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 등에 사고를 설치하여 보관했다. 3년마다 책을 거풍시켜서 습기를 제거하고 부식 및 충해를 방지하는 '포쇄'를 시행하는 등 실록 관리에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 포쇄를 끝내면 다시 궤속에 넣고 봉인을 여러 겹 하여 실록의 내용이 누설되거나 공개되는 일이 없도록 만전을 기했다.
기록의 내용은 사관들이 목숨을 걸면서까지 엄정하게 하려 노력하였고, 기록의 보관은 심산유곡의 격리된 사고에 비장하여 전쟁 및 각종 재난으로부터 보호하려고 애를 썼다. 물론 왕도, 대신도 이를 사사로이 열람할 수 없었다. 국정 운영의 참고자료로 삼기 위해 별도의 요약자료를 만들었으며, 실록을 고증할 필요가 있을 때는 사관을 사고에 파견해 관련 내용만을 베껴 오도록 하였다.
21세기 대한민국은 기록에 관한 한 야만의 시대다.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증발이란 '막장 코미디'를 보면서 '조선왕조실록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이제 더 이상 막장 코미디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이제 검찰로 넘어간다고 하니 원칙과 법을 어기고, 역사 앞에 죄인이 된 자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원칙과 법'에 의해 처벌받기를 기대한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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