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얼굴을 가장 붉게 하는 것은 첫 협상의 기억입니다. 요즘 서점에는 협상의 기술에 관한 좋은 책도 많이 나와 있고 대학이나 대학원에도 협상 강좌가 개설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배움의 기회도 적었고 무엇보다 협상이 뭘 배워서 하는 거라는 인식 자체가 부족했습니다. 별다른 준비 없이 뛰어들었던 첫 번째 협상의 기억은 끔찍합니다. 이 협상이 정말 고객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건지, 다음엔 어떤 카드를 꺼내야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도무지 자신이 없었으니까요.
협상에 관련된 책과 강의로 널리 알려진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워튼스쿨 교수는 협상을 학문의 수준까지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의 책과 강의를 살펴보면 무릎을 치게 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협상이라는 것이 어떻게 해서든 합리적으로, 그래서 서로의 주고받음에 '이성적'으로 그리고 '계산적'으로 만족할 수 있도록 진행되어야 한다고 굳건히 믿었는데, 다이아몬드 교수는 이런 생각이야말로 가장 흔히 범하는 실수라고 지적합니다.
그는 협상에서 감정이 사실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상대를 존중하고 공감하지 않으면, 그래서 협상 상대자가 감정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지 않으면 협상은 잘 진행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다이아몬드 교수는 역설적으로 자잘한 협상의 기술을 배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잔꾀를 부리지 말고 상대를 진심으로 대하면 진짜 공감과 신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지요.
협상 상대방에 대한 신뢰 못지않게 조직 내부에서 협상 대표를 믿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협상 대표로 선임해 놓고 행동과 말을 하나하나 통제하려고 들면 협상 상대방과 공감과 신뢰를 만들어 내기는 무척 어려울 겁니다. 협상 대표가 하는 말과 행동이 비록 좀 거슬리더라도 일단 그것이 깊은 전략적 사고에서 오는 것이라 믿어야 합니다. 평가는 협상의 결과물로 할 수 있으니까요.
오늘 엄중한 국제정세 속에서 중국과의 협상을 시작한 우리 대통령에게도 그런 신뢰의 마음을 보내 봅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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