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지키는 사람들<7> ‘인문학 책방 길담서원 대표 박성준
"길담서원에는 인문과 사회과학책 3500여권이 있어요. 몇발짝 안 되는 거리에 좋은 책들이 촘촘히 꽂혀 있지요. 피아노가 한 대 있어 음악회도 많이 열립니다." 길담서원을 간단히 소개한 박성준 대표가 아이들의 나이를 묻는다. "여러분은 언제 태어났어요?" "1996년이요." "저는 1940년에 태어났어요. 여러분의 할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지요?" 아이들이 놀란 얼굴로 숨죽여 웃는다. 낯설었던 분위기가 허물어진다.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아이들과 74세의 '소년' 박성준 대표 사이에 교감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아이들이 길담서원의 서가에서 고른 책을 함께 살펴보았다. 작가 김애란을 가장 좋아한다는 이주미 학생은 '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를 택했다. 무대연출가가 꿈인 문인경 학생은 자신의 몫으로 인문학자 김경집의 '마흔 이후, 이제야 알게 된 것들'을 꺼내들었다. "아직 18살이지만 마흔이 됐을 때를 미리 생각해보고 싶어요." '백석 시집'을 점찍은 학생, 철학책을 살펴보는 학생도 있었다.
박 대표에게도 길담서원은 어떤 '답'이 됐다. 오랜시간 민주화와 반전평화운동을 펼쳐왔던 그는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길담서원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며 "이런 환경이 아니었다면 누릴 수 없는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돌이켰다. "길담서원을 열면서 철학공부를 시작했다"는 그는 지금 길담서원에서 2주일에 한번씩 자신이 직접 강사로 나서 철학강의를 하고 있기도 하다.
단순한 책방을 넘어 배움을 강조하는 이유는 박 대표 스스로의 '자성'도 깔려 있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들고 있다고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책을 어떻게 공부하느냐가 중요하다. 실은 학자도 교수도 정치인도, 제대로 공부를 하는 사람이 없다." 길담서원은 그에게 "옛날에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되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게 되는" 계기였다.
박 대표가 이 날 방문한 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던진 말에는 이런 고민이 담겨 있었다. "제가 74살이잖아요. 길담서원을 떠날 걸 생각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길담서원뿐만 아니라 좀 더 먼 곳으로 떠나야겠죠. 그 때 난 마음 속에 내가 남겨두고 떠나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나보다 훨씬 젊은, 나와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을 만들고 있어요. 그 사람들이 길담에 남을 것이고 그 사람들이 있는 곳에 길담이 있을 겁니다."
김수진 기자 s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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