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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의 '눈물겨운' 방사선 탈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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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따라잡기①] 엄마들, 마트갈 때 마다 측정기 들고…
주부 김지선 씨가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에 기록된 숫자를 가리키고 있다.

주부 김지선 씨가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에 기록된 숫자를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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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강추위가 시작된 11월 중순. 서울 혜화동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에서 만난 주부 김지선(35·부천)씨는 아이의 손을 꼭 쥔 채 손바닥만한 기계를 목에 걸고 있었다. 김씨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기계의 디지털 모니터에는 계속해서 다른 숫자가 찍혔다. 김씨가 목에 건 기계는 휴대용 방사선 측정기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로 우리나라 주부들 사이에서 활용도가 높아졌다.

김씨는 지난해 3월 후쿠시마 원전 사태 직후 방사선 측정기를 구입했다. 현금가 110만원으로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김씨를 비롯해 그가 자주 찾는 온라인 카페의 회원들은 설득력 있는 근거 없이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정부가 못마땅해 스스로 정보를 찾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김씨는 "아이와 함께 병원 엑스레이(X-ray) 촬영실 근처라도 가게 되면 유독 더 신경이 쓰인다"며 "수치 측정만으로 방사선 노출에 대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경고음이 울릴 정도의 수치가 나타나면 재빨리 그 자리를 피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측정기가 나타내는 숫자는 0.197μSv/h(마이크로시버트)를 전후를 기록하다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는 0.413μSv/h(마이크로시버트) 까지 올라갔다. 연간 방사선 피폭한도인 1000마이크로시버트(1밀리시버트)에 비하면 적은 선량이긴 하지만 김씨는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김씨가 아침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베란다 창문을 열어 대기상 방사선 수치를 확인 하는 일이다. 매일 같이 측정하는 게 번거로울 법도 하지만 김씨는 "방사능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맡을 수 없기 때문에 측정기가 없다면 안심이 안된다"고 말했다.
주부 김지선씨가 물에 담근 숙주나물에 제염처리를 하고 있다.

주부 김지선씨가 물에 담근 숙주나물에 제염처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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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을 위해 식사 준비를 할 때도 여느 가정집과는 다르다. 김씨는 채소류로 음식 을 조리하기 전 식초물에 10~20초간 담그거나 끓는 물에 살짝 데치는 과정을 빠뜨리지 않는다. 이 방법은 이미 카페 회원들 사이에서 방사성 물질을 유출시키는 데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김씨는 일본 원전 사태 직후엔 일부러 사건 그보다 이전 날짜에 제조된 냉동식품만 찾아다녔다. 현재도 식품의 원산지 확인은 기본이고 일본산 제품은 웬만하면 피한다. 공산품을 구입할 때조차 본능적으로 휴대용 측정기를 꺼내보는 게 습관이 됐다.

김씨는 "난 거창하게 탈핵을 주장하거나 극성을 떨려는 게 아니다"라면서 "다만 아이 들이 많이 어리고 좀 더 안전하게 살고 싶은 바람에서 이런 저런 노력들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의왕시에 사는 주부 임미선(35)씨 역시 올해 4월 고가의 휴대용 측정기를 장만했다. 후쿠시마 사고 후 막연히 불안해하던 임씨는 온라인 카페를 통해 방사능 정보를 접한 뒤 경각심을 가지게 됐다.

임씨는 "초기에는 아침, 저녁 수시로 재보곤 했지만 지금은 비가 오기 전후 위주로 월 10 회 정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씨 가정 역시 일본산은 식재료는 피하고 수산물은 일절 먹지 않는다. 유제품 소비량도 과거에 비해 10분의 1로 줄었다. 한창 성장하고 있는 세 아이의 건강을 위해 야채는 미지근한 물에 씻거나 식초와 소금을 희석한 물에 담갔다 요리재료로 쓴다. 고기류는 한 번 끓인 후 조리한다.

딸 셋을 둔 최경숙(40·마포구)씨는 비 올 때 사용한 우산과 신발, 비 맞은 옷을 바로 세탁한다. 최씨는 반신욕이 방사능 물질 배출에 효과가 있다는 얘길 들은 후로는 가끔씩 뜨거운 물에 반신욕을 하고 있다.

그는 "아는 지인의 경우 남편이 일본 출장이라도 다녀오면 옷이나 캐리어 등 가져갔던 물건 일체를 세탁한다"며 "정부나 기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니 우리가 직접 이렇게라도 챙기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고 토로했다.

주부들의 이같은 노력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환경운동연합의 이재훈 간사는 "주부들이 이렇게 나서게 된데는 국가의 방사능 검역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며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간사는 "방사성 물질 함유가 의심되는 식품이 일반 가정까지 침투하기 전 단계에서 국가가 안전한 먹거리가 유통될 수 있도록 철저히 관리·감독하는 게 더 시급한 해결책이다"라고 주장했다.

가정에서 일일이 식품 내 방사성 물질의 양을 측정하기가 어렵고 또 제염과 데치기 등의 방법으로 얼마만큼의 방사성 물질이 제거됐는지 선량계(휴대용 측정기)로는 실질적으로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주부들의 관심이 사회적으로 득이 된다고 보는 입장도 있다. 유은정 정신과 전문의는 "방사능과 관련한 포비아(공포)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엿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미비한 수치를 문제 삼아서 판매 금지를 요구하는 등 무리한 행동을 제외한다면 세상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부분에 대해 시민들이 직접 나서 관심을 촉구하는 면에서 무척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편집자 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산 생선은 손도 대지 않는다는 주부가 있다. 1년간 엑스레이(X-ray)를 50번이나 찍었는데 방사선 피폭이 걱정된다는 질문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지난 해 도로포장에서 방사선량이 기준치 이상 검출됐던 서울의 한 동네에서는 아직까지 주민들의 걱정이 가시지 않는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정도는 문제없다'고 하지만 시민들은 '언제 어떻게 피해가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며 두려워한다.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원전, 각종 산업 현장과 병원에서 사용되는 방사선 기술은 이미 우리네 삶 깊숙이 맞닿아 있다.아시아경제신문은 이처럼 방사선의 '개운치 못한' 몇몇 궁금증을 5회에 걸쳐 파헤친다. 우리 눈을 가리고 있는 방사선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걷어내고 '바로 알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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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서 기자 en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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