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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패러다임의 변화' 바로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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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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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만들어낸 개념이 학계에 큰 파급효과를 내고, 사람들에게 널리 인용되는 것은 학자들의 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라틴어나 한자를 뒤적이면서 자신이 만들어낸 개념을 가장 잘 표현해낼 멋진 말들을 찾아 고심합니다. 요즘 널리 쓰이는 통섭과 같은 단어가 바로 성공적인 예입니다만, 그래도 이런 말들 가운데 으뜸가는 것은 '패러다임'이 아닐까 싶습니다.

학계를 넘어, 학원광고나 드라마 대사로도 쓰일 만큼 유명해진 이 말은 사람을 두 번 헛갈리게 한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그 요상한 철자 때문이고, 두 번째는 너무 여러 가지 뜻을 담고 있어서이지요. 특히 쓰는 사람마다 이 단어를 제 나름의 뜻으로 쓰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데, 이 단어를 세상에 처음 알린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책에서조차 스물두 가지의 다른 뜻으로 쓰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거칠게 정의해보면 패러다임은 '한 시대가 믿고 있는 모범적이고 표준적인 생각의 틀'입니다. 천동설이 좋은 예입니다. 천동설을 믿던 시대의 과학자들은 천동설을 기반으로 여러 가지 과학적인 문제들을 열심히 풀었습니다. 그러나 몇몇 명민한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결과가 천동설(패러다임)과 충돌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지요.

어떤 학자들은 자신의 연구가 틀렸다고 생각해서 그 결과를 쓰레기통에 버리지만 '의심할 줄 아는' 학자들은 기존의 패러다임에 도전하고 충돌과 갈등, 혼란을 겪으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만들어집니다.

재미있는 것은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는 사람이 언제나 소수라는 점입니다. 대부분은 낡은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헛수고를 하거나 심지어 변화에 저항합니다. 천동설의 마지막 역작이라고 불리는 '에피사이클'이라는 모형을 보면, 천동설에 맞추어 별들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 엄청나게 복잡한 수학적 계산을 마다하지 않는 안간힘을 생생히 볼 수 있습니다.(지동설은 훨씬 단순합니다)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시대는 어떠할까요? 인간의 욕망이 경제성장의 동력이라는 찬미는 지역과 계층 사이의 엄청난 불균형, 높은 실업과 거품붕괴 앞에 무색해져 버렸습니다. 최근의 행동경제학 실험들은 경제학의 기반인 일반균형이론 그 자체에 대해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합니다. 경영학이론을 따르던 기업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합니다. 관료제를 바탕으로 효율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던 기업들이 빠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사라져가는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옵니다.

문제는 우리가 겪고 있는 이런 일들이 잠시 정상을 벗어난 상태인지, 아니면 커다란 패러다임 변화의 서막인지를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잠시의 비정상적인 상태라면 소나기를 피할 수 있도록 우산을 펼치면 될 것입니다. 금리와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침체를 일단 견디고, 실업자의 생계보장과 재취업과 같은 안전망 확충에 노력하는 것이 바로 우산을 펼치는 일입니다.

하지만 만약 이 비가 아주 길고 긴, 어쩌면 영원한 우기의 시작이라면 우산을 펴고 서 있으면 안 됩니다. 당장엔 비를 흠뻑 맞더라도 집을 옮기고 도랑을 파는 고된 일을 해야만 홍수를 견딜 테니까요. 힘들지만 경제체계와 기업경영의 근본적인 수술을 단행해야만 할 겁니다.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유력한 두 후보 모두 '경제민주화'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정책을 살펴보니 한 분은 우산을 펼치자고 하고 있고, 다른 한 분은 집을 크게 수리하자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이번 대통령 선거는, 제게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말을 곱씹게 합니다. 어렵고 떨립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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