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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 '진화' 요구하는 다문화시대

최종수정 2012.08.13 10:34 기사입력 2012.08.06 15:55

중도입국청소년 대상 교육 실시하는 레인보우스쿨

[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 서울 종로구 통의동 무지개청소년센터는 경복궁을 마주한 작은 2층 건물이었다. 1층 교실에서는 오후 12시부터 한국어 초급 수업이 시작됐다. 8명의 학생들이 골똘히 교재를 들여다본다. "한국어 어렵지 않느냐"고 열없는 질문을 던지자 이홍매(가명·20)씨가 제일 먼저 웃음으로 답한다.

홍매씨는 올해 3월 중국 길림성에서 한국으로 왔다. 5년 전 먼저 한국에 들어 온 어머니는 식당을 차리고 자리가 잡히자 홍매씨를 불렀다. 조선족이었던 어머니 덕분에 한국어로 간단한 이야기는 할 수 있지만 복잡한 대화나 읽고 쓰기는 아직 불편하다. 그래서 무지개청소년센터를 찾았다. 무지개청소년센터가 운영하는 '레인보우스쿨'에서 한국어를 비롯한 공부를 하게 된 계기는 친구의 소개였다. "지난해 먼저 공부한 친구 왕웨이가 알려줬어요."
한국 생활은 만만치 않다. 수업이 끝나면 바로 어머니가 운영하는 외대 앞 순대국집으로 직행한다. 손님이 많은 날은 밤 12시까지 일한다. 그래도 홍매씨에게 한국은 아직까지 괜찮은 나라다. "사람들 친절하고 나쁜 사람 없어요." 홍매씨는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컴퓨터그래픽을 배웠다. "앞으로 한국에서도 학교 가서 계속 컴퓨터 그래픽을 공부하는게 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는 17일 레인보우스쿨 여름학교가 끝나면 무엇을 할지 묻자 밝고 상냥한 홍매씨 얼굴에도 당혹이 스쳤다. 홍매씨와 같은 중도입국청소년들에게 한국 사회는 좀처럼 쉽게 열리지 않고 있다.

다문화시대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다. 지난해 6월 행안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외국인 거주민은 126만 5000명 수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2.5%다. 2006년 처음 조사가 실시된 이후 매년 20%씩 늘어났다. 이주여성이 국회에 진출하는 등 한국 사회도 서서히 적응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낯설기만 한 '사각지대'는 여전히 남아있다. 중도입국청소년도 그 중 하나다.

이주배경을 지닌 청소년은 북한에서 온 북한이탈청소년과 외국인근로자가정의 자녀 등으로 다양하게 구분된다. 그 중 중도입국청소년은 외국에서 성장하다 학령기 무렵 한국으로 들어온 청소년들을 가리킨다. 윤상석 무지개청소년센터 부소장은 "탈북한 부모 아래 중국에서 태어났다가 한국으로 따라 들어오는 청소년도 있고, 한국인과 재혼해 현지에 있는 자녀를 데려오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새로 '발견된'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빨리 이해가 되지 않는 배경을 지닌 경우도 있다. "탈북 후 중국에서 강제 결혼이나 인신매매를 강요받고 중국에서 사실혼 관계로 지내다가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들어오는 상황 같은 걸 생각해보세요. 제3국 출생 북한이탈주민 자녀인데, 엄마는 탈북여성이고 아이는 중국인입니다. 중국에서 살았으니 한국어는 못 하고요. " 중도입국청소년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도 없다. 2010년 국내에 귀화신청을 한 청소년이 5726명이라는 법무부 조사가 유일하다. 귀화신청을 하지 않았거나 제대로 된 비자가 없는 청소년 등을 감안하면 1만명 이상일 거라고 추정할 뿐이다.

윤 부소장은 "2010년이 되어서야 우리 사회에서 중도입국청소년이 처음 얘기되기 사작했다"고 말했다. 레인보우스쿨 사업은 이러한 중도입국청소년들의 국내 적응을 돕기 위해 시작됐다. 한국어가 서툴고 사회 적응이 어려운 중도입국청소년들에게 도합 400시간의 한국어와 진로적성 교육을 실시한다. 2010년 시범사업 끝에 지난해부터 서울을 포함한 전국 9개 지역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서울에서는 무지개청소년센터와 서울시립청소년수련관, 겨레얼학교 3군데가 사업을 맡는다. 지난해 전국에서 609명이 레인보우스쿨을 거쳐갔다. 7월부터 8월 사이에는 3주 코스로 여름학교가 열린다. "천안이나 경기도 광주에서부터 아침 9시까지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친구들도 있다"는 설명이다.

앞으로 레인보우스쿨 사업의 추진 방향은 진로교육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도 많아 진학보다 취업을 더 원한다. 그러나 쉽지 않다. 지난해까지 중도입국청소년들은 대개 방문비자를 받았다. 방문비자로는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일을 할 수 있는 동포비자등을 받아도 직업훈련이 제공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한국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레인보우스쿨 교육에서도 중도 탈락하거나 3D 업종으로 빠져 사회적 약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윤 부소장은 "중도입국청소년들이 한국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잡으려면 정책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용시장은 고용노동부에서 맡고, 학령기 이주배경청소년들을 제도교육으로 흡수하는 건 교육과학기술부 소관이다. 체류신분은 법무부에서 관할한다. 이 중 어느 부서도 제대로 관여하려고 하지 않는 영역이 중도입국청소년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간 각 부처와 지자체가 앞다퉈 다문화정책을 제시하며 '비효율성'이 계속 문제로 꼽혀왔다. 윤 부소장은 "농림수산식품부부터 경찰청, 지자체까지 다문화정책을 안 내놓는 기관이 없을 정도"라며 "새 정책을 만들기보다 지금 쏟아지는 정책을 제대로 총괄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단은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 교과부는 올해 3월 다문화학생교육선진화방안을 내놨다. 다문화학생이 공교육에 진입할 수 있도록 예비학교를 운영하고, 중도입국청소년 등 학생들의 특징을 고려해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12월 청소년복지지원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시행령에 이주배경청소년 지원 사업 근거와 내용이 규정됐다. 2일부터 발효된 시행령 이전에는 사업의 법적 근거가 없었다. 한국 사회가 본격적 다문화를 맞이하며 진화하고 있는 양상인 셈이다.

윤 부소장은 마지막으로 '다수자의 태도'를 얘기했다. "소수자 지원도 중요해요. 하지만 다문화사회를 유지하는 핵심은 다수자들의 태도입니다. 다수자들에 대한 통합과 반차별 교육 강화가 공교육 내부에서 병행돼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이주노동자가 들어온지 20년이고 다문화사회가 이슈로 부상한 건 10년입니다. 앞으로는 이주배경청소년들이 자라서 우리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김수진 기자 s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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