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 "마흔 넘어 농촌답사를 다닐 때 시골 농부와 아낙네가 만들던 짚신이며 소쿠리, 볏짚항아리, 가방 이런 것들이 참으로 귀중해 보였다. 당시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새마을 운동이 한창여서 기계가 들어오고 슬레이트 지붕으로 집들이 바꼈다. 그래서 농촌 짚풀 문화가 사라졌다. 그게 참 안타까웠다"
인병선 짚풀생활박물관 관장(여 75세)의 푸념이다. 그가 말한 짚풀 생활용품은 이제 모두 골동품이며 민속자료가 됐다. 지금 농부들은 만들어내지 않는다. 인 관장은 우리 농촌 전통 문화인 '짚풀'을 기록하고 남겨야한다고 생각했다. 35년간 조사연구해 유물을 수집하고 사립박물관을 세워 살아있는 이들에게 그 모습을 생생히 전하고 있는 이유다.
그는 "20년 넘게 박물관을 운영하면서 절실했던 게 정부의 관심"이라면서 "재정적으로 어려워 사재를 털어 운영을 지속하고 있는 사립박물관들을 국가가 공공자원으로 여겨 실질적인 지원책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충현박물관. 이 사립박물관은 조선시대 청백리인 오리 이원익 선생의 종가에서 만든 전국 유일의 종가박물관이다. 400년 넘는 이원익 선생 관련 유물과 유적지를 보존, 복원하는데 만 6년의 세월이 걸렸다. 이 박물관이 개관한 시기는 2003년께다.
이런 사립박물관들에 희소식이 들린다. 국공립과 다르게 개인이 자비를 들여 건립하고 운영이 어려운 사립박물관에 정부가 지원 확대를 추진하고 있어서다. 특히 사립박물관은 특정 주제나 지역성을 뚜렷하게 띠고 있어 잠재적 성장 가능성이 높고, 1세대 설립자들의 고령화로 박물관 보유자료를 공공 자산화해야한다는 인식을 정부도 함께 하고 있다.
곽영진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은 23일 '박물관 발전구상'을 발표하며 "사립박물관도 비영리법인으로 해 안정적인 운영체제를 구축하고, 각종 지원사업 대상 선정에 비영리법인 박물관을 우선 선정해 공공성과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문화부는 중장기적으로 관련 법 개정을 통해 독립적인 박물관법인(가칭)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더불어 박물관 평가인증제를 실시해 국공립박물관 역량을 확대하고, 사립박물관도 인증 후 3년간 학예사 경력인정기관 자격을 부여키로 했다.
문화부는 또 지난 1996년 12월과 2007년 1월 각각 삭제했던 박물관 양도소득세 면세와 상속세 유예조항을 부활시키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그 당시만 해도 이런 면세혜택을 적용 받았던 사립박물관은 신천지미술관 1곳 뿐이었다.
장경숙 한국박물관협회 사무국장은 "과거 재정적으로 힘든 사립박물관이 독자적으로 운영해 확장해 부지를 옮기는 일이 거의 드물었다"면서 "문화향유 수요가 늘어가고 특정주제의 전문전시가 많은 사립박물관을 많이 찾게 된다면, 역량을 높이게 되고 규모도 커져 개인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공공재산으로서 이러한 지원은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 박물관은 지난해 말 현재 총 695관으로 이중 국립이 30관, 공립 313관, 사립 262관, 대학이 90관이다. 공립과 사립의 비중이 가장 크다. 장 국장은 "사립박물관이 수적으로 많긴 하지만 정부 예산부족으로 인력이나 전시프로그램 지원도 대상이 되는 사립박물관들에게 모두 혜택이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문화부에서 이번에 대대적인 지원책 추진을 발표한 데 대해 용기가 난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가 공사립 박물관에 지원하는 예산은 1억원 미만이다.
지원대상 사립박물관에는 주식회사와 기업이 운영하는 박물관 또는 미술관은 제외된다.
용오성 문화예술국 문화여가정책과장은 "사립박물관을 법인화하고 공공성을 강화하면 공공재산 개념이 되기 때문에 엄격한 기준을 마련해야겠지만 세제혜택 등 다양한 지원책을 제공하게 된다면 제대로 박물관을 운영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큰 활력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곽영진 차관은 문화콘텐츠 개발의 원천인 박물관의 발전을 위해 ▲박물관 조명 LED로 교체 ▲국외유물 국내전시 시 정부 지불보증제 ▲박물관 기증유물 감정평가위원회 설치 등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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