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中 자본 유입 경계하며 심사 강화
전기차 배터리 관련 투자는 늘어
지난해 중국의 대(對)유럽 투자액이 1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급감했다. 코로나19 등 여파로 중국의 대외 투자 여건이 악화한 영향도 있지만, 유럽연합(EU)이 주요 인프라에 대한 중국 자본 유입을 경계한 탓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의 유럽연합(EU) 및 영국에 대한 투자액이 지난해 79억유로(약 11조5403억원)로 전년 대비 22% 감소했다. SCMP는 "유럽에 대한 중국의 투자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일대일로(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 지출이 발생하기 전인 2013년 수준으로 돌아갔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가 인용한 독일 싱크탱크 메르카토르중국학연구소(MERICS)와 미국 컨설팅업체 로디엄 그룹의 공동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이 같은 추세는 중국의 광범위한 대외 투자 급감과도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지난해 중국의 대외 투자는 1110억유로를 기록, 전년 대비 23% 감소하며 8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특히 인수·합병(M&A) 관련 투자는 21% 감소한 220억유로에 그쳤다.
SCMP는 유럽에 대한 투자액 감소에 대해 "유럽 정부가 주요 인프라에 대한 중국의 투자를 보다 면밀히 검토하면서 발생한 것"이라면서 "EU는 최근 회원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 심사 프로세스를 도입, 위험 투자를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유럽위원회는 함부르크 항구의 터미널 지분을 매입하려는 중국 국영 해운 대기업 코스코의 입찰을 거부할 것을 독일 정부에 권고한 바 있다. 당초 코스코는 함부르크 항구의 4개 컨테이너 시설 중 최소 규모인 톨러포트 터미널의 지분 35%를 매입하려했고, 독일은 지분율을 낮춰(24.9%) 지분 매각을 승인한 바 있다. 다만 해당 거래는 내각의 저항으로 현재 재검토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는 또한 중국 자체적으로도 에너지, 인프라, 부동산 및 금융 부문에 대한 투자 여력이 떨어졌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중국 내 관련 부채가 많은 기업의 재무 위험을 줄이기 위해 자본통제가 강화됐으며, EU-중국 간 관계 악화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의 주요 인프라에 대한 더 엄격한 투자 심사 등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유럽 지역 투자의 88%는 영국, 프랑스, 독일, 헝가리 등 4개국에 집중됐는데, 이 가운데 전기자동차(EV) 배터리 제조업체의 대규모 그린필드 투자는 오히려 증가세를 보였다고 보고서는 진단했다. 그린필드 투자는 외국인 직접투자(FDI)의 일종으로 모기업이 다른 나라에 자회사를 설립해 사업을 처음부터 구축하는 방식의 투자를 말한다.
로디엄 그룹 관계자는 "중국 기업들이 유럽에 투자하는 방식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면서 "투자의 대부분이 기업 인수에 집중됐었으나, 이제는 배터리 공장에 대한 투자가 견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 기업들은 유럽의 전기차 공급망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면서 "유럽의 녹색 전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베이징=김현정 특파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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