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민 전호성씨…공익제보단 참여
1년 2개월 동안 불법 오토바이 신고
"내 지역 지키는 사람은 나" 의식 강조
월 20만원 수고료…안전한 동네 '보람'
세종시 교통사고 사망자 수 대폭 줄어
국내 배달기사(라이더) 숫자는 지난해 하반기 기준으로 40만명에 육박했다. 건당 수수료로 수익을 올리는 라이더에게 ‘시간은 돈’이다. 배달 업계도 더 빨리, 더 많이 배달하는 데에만 몰두했다. 자연스럽게 불법·난폭운전을 하는 라이더가 늘어났다. 올해 상반기에만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265명이 사망했다. 전체 교통사고 건수는 감소하는 반면 배달 오토바이 사고는 이에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서울 강남 선릉역 인근에서 한 라이더가 화물차에 치어 사망하는 사고는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줬다.
세종 아름동 해피라움상가 사거리. 학원과 식당이 몰려있는 이곳은 어린이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지난 2일 오전 11시30분께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조용하고 한적했던 거리가 일순간 오토바이 무법지대로 변했다. 중앙선 침범, 보도주행, 신호위반, 헬멧 미착용 등 불법행위를 하는 배달 오토바이가 수시로 목격됐다.
세종시에 사는 전호성씨는 "보행자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인도와 횡단보도마저 오토바이가 점령했다"며 "부모님들은 마음 놓고 자녀를 학원에 보낼 수도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전씨는 지난해 7월부터 세종시의 ‘교통안전 공익제보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평범한 직장인인 그가 1년2개월 동안 신고한 오토바이 불법운전 건수는 1900여건에 달한다. 전국 3위에 오를 만큼 높은 실적이다.
그와 함께 20분 동안 사거리 모퉁이에서 배달 오토바이 불법운전 실태를 관찰하고 ‘스마트국민제보’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신고를 해 봤다. 한여름 잠자리 떼처럼 난폭운전을 하는 오토바이가 사방에서 출몰했다. 헬멧 대신 캡모자를 쓴 라이더, 번호판 없이 내달리는 오토바이까지 발견했다. 하지만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움직이는 오토바이를 촬영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토바이 번호판의 작은 숫자와 한글이 정확하게 식별돼야 경찰이 법규 위반 처분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전씨는 "초반에는 열심히 신고를 해도 50%밖에 처분이 안 됐지만 지금은 노하우가 쌓였다"고 했다.
◆베테랑도 사용하기 힘든 '제보앱' = 그는 이제 불법 오토바이를 잡아내는 데 도가 텄다. "눈으로 보고 촬영하는 게 아니라, 주변의 엔진 소리를 듣고 경로를 예측해서 찍습니다." 오토바이 굉음만 듣고도 감각적으로 위치와 예상 경로를 파악했다. 라이더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휴대폰 각도를 살짝 틀어 동영상 촬영을 한 후 신고내용을 임시 저장한다. 번호판 사진 캡처를 비롯해 위반 장소, 발생 시간 등 상세한 정보는 추후에 집에 돌아가 입력한다. 하루 총 2~3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이다. 그는 이날 8건의 불법운전을 신고했다. 전씨는 "이렇게 신고를 해도 처분이 안 되는 게 제보단의 가장 큰 고충"이라며 "일반 국민이 쉽게 신고할 수 있도록 스마트제보 앱을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씨는 인도주행을 하던 오토바이에 어머니가 다칠 뻔한 일을 겪은 후 제보단에 참여하기로 했다. 월 최대 20만원의 수고료를 받을 뿐이지만, 자신의 시간과 노력으로 안전한 동네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는 데서 보람을 느낀다. 전씨는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서였다면 이렇게 많은 건수를 신고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내 지역을 지키는 사람은 나’라는 시민 의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민 적극적 활동에 바뀐 市 = 현재 세종에는 총 104명의 공익제보단이 활동하고 있다. 제보단 신고를 빠져나가기 위해 번호판을 고의로 가리거나 훼손하는 오토바이도 생겨났다. 번호판 고의 가림·훼손은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해당하는 범죄행위다. 세종시 관계자는 "오토바이 불법행위를 신고하자는 현수막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알리고, 라이더들도 볼 수 있도록 아파트 단지 내에 전단지를 부착했다"고 말했다.
세종은 전국 최고의 오토바이 위험 지역이었다. 2015~2019년 평균 세종 관내 이륜차 1만대당 사망자 수 3.5명으로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가장 많았다. 배달 오토바이에 대한 민원도 폭발했다. 하지만 단속을 강화하고 안전운전 캠페인을 벌인 후 가시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지난해 세종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7명으로 전년 대비 절반으로 줄어 감소율 전국 1위를 기록했다. 인구 10만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도 2.0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적을 만큼 개선됐다. 전씨는 "헬멧을 쓴 라이더가 이전보다 확실히 늘어났다"며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 신호를 지키는 오토바이를 보고 뿌듯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세종시가 신규 모집한 제보단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힘이 닿는 데까지 제보단 활동을 이어갈 생각이다. 그는 "아무리 생계 유지를 위해 수익을 올리는 게 중요하다지만 사람의 생명과 맞바꿀 순 없다"며 "지금 이 순간에도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는 보행자와 어린이, 약자들을 위해서라도 오토바이 불법운전은 근절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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