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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속고발권 폐지' 두려운 中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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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징금으로 끝날 일로 이제 실형까지 살 판"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8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윤동주 기자]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8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윤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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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하면 과징금으로 끝날 일이지만, 검찰이 나서면 실형을 살 수도 있다."


한 중소기업 경영인은 정부와 여당이 전속고발권 폐지를 뼈대로 한 공정거래법 전면개정 강행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전속고발권은 담합 등 불공정행위 위반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만 검찰에 고발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경성담합(hardcore cartel)'에 한정해 전속고발권이 폐지된다. 경성담합은 기업의 독점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담합을 지칭하는데, 가격·수량 담합, 시장분할 담합, 입찰 담합 등 시장에 미치는 폐해가 큰 담합이다.


공정위가 적발하는 담합 사건의 90% 이상이 경성담합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전속고발제의 전면 폐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곧 공정위의 담합 사건 자체를 검찰이 수사하게 된다는 의미다. 따라서 개정법이 시행되면, 경성담합이라고 판단되는 경우에 대해서는 누구나 기업을 검찰에 고발할 수 있고, 검찰은 자체 판단에 따라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


고발권 남용 땐 법적 대응력 취약

문제는 일반 시민이나 경쟁사 등의 고발권 남용에 따른 중소기업들의 경영 활동 위축이다. 대기업에 비해 기술이나 자본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여럿이 뭉쳐 공동 기술개발과 제품의 공동생산, 공동브랜드를 달고 동일한 가격으로 시장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공동브랜드에 참여하지 못한 다른 경쟁 기업 등이 이런 정보를 입수하고, 공정위나 검찰에 담합으로 고소·고발할 경우 '가격에 대한 담합'이라는 행위가 분명하기 때문에 '경성담합'으로 공정거래법 위반이 된다.

중소기업협동조합법상 공동생산 등을 위해 공동회의 등을 거친 경우에는 담합으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지만, 리니언시를 하거나 경쟁사가 고소·고발하면 공정위의 조사는 피할 수 없다. 지금까지는 전속고발권이 있는 공정위의 과징금 등 행정처분으로 끝나지만, 검찰이 수사를 하게 되면 형사처벌 대상이 돼 실형이 구형될 수 있다.


대형로펌에서 공정거래법 관련 사건을 전담하고 있는 한 변호사는 "악성의 담합 사건은 행정처벌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추가 형사처벌 해야 하지만, 중소기업이 연관된 대부분의 담합 사건은 가벼운 행정처벌로 충분하다"면서 "그러나 검찰이 수사할 경우 사업진행 과정에서 위반한 사소한 행위가 별건 수사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 기업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희중 중소기업중앙회 상생협력부장은 "실제로 담합이 아니더라도 제3자가 담합이라고 인지해서 고소·고발하면 검찰 수사가 불가피하다"면서 "현실적으로 중소기업의 법적 대응능력이 부족하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1건만 고발돼도 정상적 업무진행이 어려워진다"고 하소연했다.


검찰 '별건 수사' 안한다…"신뢰 못해"

더 심각한 문제는 검찰의 '별건 수사'다. 담합으로 공정위 조사 후 검찰의 수사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운을 뗀 중소기업 관련 단체 핵심 관계자는 "전속고발권 폐지되면 검찰이 직접 기업을 수사하게 되면 기업이 굉장히 위험해진다"면서 "담합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에 대한 답변을 준비했는데 정작 수사는 횡령에 대한 것이었다. 혐의를 벗기 위해 엄청나게 고생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고발된 사건을 수사하면서 엉뚱한 사안을 들춰 결국 별건 수사로 변질된다"면서 "털려고 드는데 털리지 않을 기업이 어디 있느냐. 기업하는 사람들을 범죄자로 만들려는 악의적 법개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리니언시를 하더라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리니언시를 꺼려할 수도 있다. 지난 8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위 국정감사에서 강민구 국민의힘 의원은 "공정위가 2019년도 담합을 적발한 사건 50여건 중 30여건이 리니언시를 통해 해결됐다"면서 "이 같은 상황에서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검찰의 별건 수사 두려움에 자진신고가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여론을 의식한 듯 검찰은 별건수사를 막기 위해 검찰 내부에 예규나 시행령을 만드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담합 관련 수사를 하면서 횡령이나 배임 등 다른 혐의에 대해서는 추가로 수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셈이다.


이같은 반대 여론 속에서도 정부와 국회가 전속고발권 폐지를 강행하자 중기중앙회는 대기업부터 순차적으로 시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만큼 법무팀 운용 등 법적 대응력이 잘 갖춰진 대기업부터 우선 개정법을 시행하자"면서 "추후 시장상황을 지켜보면서 중소기업에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회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국회의 결정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적용 범위는 정하기 나름인 만큼 완충 역할로 중간 단계를 두는 것은 가능하다"면서 "공정위와 검찰의 중복 조사로 기업의 부담이 커질 수 있는 만큼 이를 제도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방안, 형사처벌 대상에 대한 조정 등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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