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심신미약 주장하며 합의 요구
[아시아경제 김수완 기자] 우울증을 앓고 있던 제자를 위로한다며 접근해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60대 국립대 교수의 범행 당시 상황이 공개됐다. 사건 발생 당시 피해자가 녹음한 파일에는 "싫어요" 207번, 비명소리 15번 등이 기록돼 있었다.
16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는 유사강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제주대학교 A(61) 교수에 대한 2차 공판을 열었다.
이날 재판은 재판부가 피해자 B 씨의 동의를 얻어 언론에만 제한적으로 공개됐다.
심문에서 재판부는 피고인을 법정에서 퇴정시키고 가림막을 쳐 피해자를 볼 수 없도록 했다. 증인석에는 성범죄 피해자를 돕는 해바라기 센터 직원이 동석했다.
A 교수는 지난해 3월, 10월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의 강의를 듣던 제자 B 씨에게 면담하고 싶다고 접근했다.
면담에 응한 B 씨는 A 교수에게 공황장애와 우울증, 어려운 가정형편 등을 털어놨다. 이에 A 교수는 자신도 같은 질병을 앓고 있다며 약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후 지난해 10월30일 A 교수는 B 씨에게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당시 이 자리에서 심한 우울증을 겪던 B 씨가 "매일 매일 극단적 선택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A 교수는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식사를 마친 뒤 A 교수는 B 씨를 제주시 한 노래주점에 데려갔다.
이 과정에서 이상한 조짐을 느낀 B 씨는 수차례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으나, A 교수는 B 씨를 강제로 끌고 들어왔다.
A 교수는 "너를 처음 봤을 때 치마를 입고 다리를 꼰 모습이 당당해 마음에 들었다"고 말하며 B 씨를 성폭행했다.
당시 상황은 B 씨의 휴대전화 녹음 파일에 생생히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가 녹음 파일을 분석한 결과 "싫어요" 207번, 비명소리 15번, "집에 가고 싶다" 53번 등이 녹음됐다.
A 씨 측은 범행을 대부분 인정하면서도 "술에 취해 있었고 우울증 등 정신병 관련 증상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달라"고 심신미약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사건 직후 A 교수는 처벌을 줄이기 위해 합의를 요구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B 씨는 10대 동생을 돌봐야 했고, 강간 피해 후 병원비까지 마련해야 했다. 결국, B 씨는 사건 직후 A 교수의 합의금을 받고 합의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B 씨는 이날 법정에서 "어쩔 수 없는 합의였다. 비록 합의서에는 A 교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했지만, 용서한 적도 용서하고 싶지도 않다. 엄한 처벌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B 씨의 진술에 재판부는 "피해자가 용기를 얻고 앞으로 잘 살아야 한다. 어린 동생을 잘 키워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한편 1심 재판부는 지난 6월 첫 공판에서 "이런 범행은 대한민국에서 없어져야 한다. 피고인을 본보기로 삼겠다"라며 직권으로 A 교수를 법정 구속했다.
김수완 기자 suw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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